<<다리가 되렴>>은 이제는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인 이금이님의 초기 작품입니다. 동화작가가 되고나서 쓴 첫 장편동화라고 해요. 무려 30여년 전의 작품입니다. 그 작품이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출간되었어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삽십 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하고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은 세월을 넘어 이어지지요. 그리고 그렇게 고전이 되는 것이고요. 옛날 배경이라든가 세세한 디테일들은 상관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대로 표현했기 때문에 아마도 이 작품은 그 긴 세월을 넘어 제목처럼 다리가 되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은지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방황하는 아빠 대신 서울 고모네 집에서 살았어요. 그래서 아빠가 시골에 자리를 잡고 은지를 불렀을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지요. 고모네서 눈치를 보고 산 것은 아니지만 역시 은지에게는 아빠의 존재가 가장 목말랐던 것이지요. 그렇게 안터말로 이사 온 은지는 아직 안터말 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육학년 윤철이란 아이와 함께 우산을 쓰게 되지요. 윤철이는 갈뫼산 중턱의 빨간 지붕 집... 희망원에 있는 아이에요. 고아지요.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고아"라는 단어는 괜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딱지 같은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저 나쁜 아이들이 많을 거라고 그런 애들과는 어울려서는 안된다고 말이지요. 편견이란 참 무서운 것 같아요. 하지만 은지는 윤철이가 희망원 아이란 사실을 알기 전에 만났고, 때문에 윤철이가 진짜 어떤 아이인지 알고 있습니다. 비록 주위 아이들이나 어른들은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아이들이라고 말해도 은지만은 그렇지 않은 희망원 아이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스스로 다리가 되고 싶어 했지요. "갈뫼산의 그늘이 빨간 지붕 위에 드리워지고 있었다. 은지의 눈엔 그 그늘이,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표시해 놓은 선처럼 보였다."...29p "희망원 아이들하고 안터말 아이들 사이에 넓은 강물이 흐르는 것 같아. 그 강물을 건널 수 있게 다리가 있었으면 좋겠어." 아빠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네가 다리가 되렴."...66p <<다리가 되렴>>이 감동적인 이유는, 오히려 은지가 훌륭한 어른처럼 완벽한 다리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신 은지의 노력이 다른 아이들에게로 전염되어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고 그런 마음들이 모여 각자가 다리 역할을 맡아 실천에 옮기게 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왠지 섭섭함을 느끼는 은지의 모습이 어찌나 현실감 있게 느껴지던지... 때문에 은지에게 더욱 더 공감되고 아이들의 모습에 흐뭇하게 미소지어 지는 것이 아닐까. 은지와 순혜가 토닥거리다가 화해하는 모습에, 또 절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윤철이와 경수가 악수하는 모습에, 오랜 세월 가슴에 묻어둔 죄와 분노가 서로 녹아드는 기와집 할아버지와 순보 할아버지의 모습에..."아름다움"을 느낀다. 억지스러움이 아닌, 용서란 이런 게 아닐까..하고 감동을 받게 되는 건 바로 이런 탄탄한 캐릭터들의 덕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들 덕에 동화는 오랜 세월을 넘어 이제 우리 아이들의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