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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위저드 베이커리>의 느낌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일까. 첫 작품에 받았던 만큼의 내용과 분위기를 기대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아가미>>는 그 자체로서 존재 의미를 갖기는 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 만큼의 통통 튀는 발상과 발랄한 전개에는 뛰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어두움이 너무 짙다고나 할까.
그래도 신비스러움이 가득한 작가의 책들은 언제나 흥미를 유발시킨다. 마치 SF소설처럼 이번엔 어떤 신비로운 장치가 작동될까..하고. <<아가미>>의 경우는 물론 아가미를 가진 주인공 소년이 된다.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사람도, 물고기도 아닌... 그렇다고 인어도 아닌 존재. 단지 어두운 과거와 죽음 앞에서 살아남기위해 저절로 진화된 그 아가미라는 장치가 주는 느낌은 조금 섬칫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소설은 크게 세 가지의 이야기를 가진다. 곤의 아버지가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정, 곤이 어린 시절을 함께 하게 된 강하와 할아버지네의 이야기, 그리고 나중에 강하의 이야기를 전해주러 온 해류의 이야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처절한 삶의 밑바닥을 보여준다.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견디는 것조차 힘든 사람들, 그럼에도 우직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살아줬으면 좋겠다니! 곤은 지금껏 자신이 들어본 말 중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예쁘다'가 지금 이 말에 비하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폭포처럼 와락 깨달았다. 언제나 강하가 자신을 물고기 아닌 사람으로 봐주기를 바랐지만 지금의 말은 그것을 넘어선, 존재 자체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것만 같았다. "...159
곤의 존재와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들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다. 그리고 이 어둠이 끝내 밝음으로 나가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물론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는 없으나 바로 그런 점을 작가에게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