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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개 화이트팽 ㅣ 레인보우 북클럽 4
잭 런던 지음, 이한기 옮김, 배정식 그림 / 을파소 / 2009년 1월
평점 :
잭 런던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건 <강철군화>라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SF 같기도 한 이 미래 소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을 노동자의 눈으로 들여다 본 의미있는 소설이다. 그런 작가의 어린이 책은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너무나 다른 소재와 주제의 책이라 기대가 컸다.
<<늑대개 화이트팽>>은 하나의 서사시다. 알래스카 근처 늑대개인 어미와 늑대인 아비로부터 태어난 화이트팽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야성성을 키워야만 하는 늑대로서 화이트팽은 탄생한다. 하지만 너무나 길고 긴 공복 속에 아비와 형제들이 죽어가고 어미와 함께 떠돌던 화이트팽은 인간을 만나게 된다. 어미의 원래 주인이었던 그레이비버와의 만남은 화이트팽에게 행운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이미 키치가 늑대와 개의 혼혈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 만남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간에게 복종하는 법을 기억하는 어미와, 아직은 어미에게 100% 의지해야 하는 새끼였던 화이트팽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수도. 하지만 그레이비버가 조금의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소유물을 대했다면 어땠을까.
인디언 부족에서 자라난 화이트팽은 그 누구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고 뛰어난 싸움꾼이었다. 하지만 외로웠다. 야성으로서의 본성과 인간에게 복종해야 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감 속에서 화이트팽은 다른 개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스스로 고독을 택했다. 늑대에게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인간은 신이었지만, 신은 그를 배신한다. 뷰티 스미스가 화이트팽에게 저지르는 악행을 보면 과연 정말로 잔인한 것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살기위해 다른 동물을 죽일 수밖에 없는 늑대인지, 자신의 악마성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자신의 애완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인지... 때문에 화이트팽이 다시 위든 스콧을 만나 사랑을 받는 장면은 가히 감동적이라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은, 인디언에게서는 그저 복종만을 강요받던 화이트팽이 스콧 경을 만나서야 사랑으로 거듭난다는 점이다. 뒤편의 "작품 깊이 보기"를 읽어보니 잭 런던의 편견으로 인한 것 같다. 이 부분이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늑대개 화이트팽>>은 아주 뛰어난 작품이다. 캐나다 북부와 미국 남부의 생활상이 한눈에 보이도록 묘사한 점이나 그당시의 금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늑대에 대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행동 묘사 때문이다. 정말로 영리한 늑대개 화이트팽이 존재했을 것만 같다. 비록 그가 그의 야성성을 버리고 인간과 함께 자식을 낳고 행복한 나날을 살아간다고 해도. 야성에서 인간으로의 회귀가 아닌, 인간의 애완견에서 야성으로 뛰쳐나간 <야성의 외침>과 함께 읽으면 딱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