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그림을 이해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책은 내 기분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그 느낌을 고스란히 내 잣대로 이해하는 편이고, 음악 또한 내맘대로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남들이 좋아하는 음악이어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다. 그런데 왜인지 그림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남들이 이해하는 대로 이해해야 할 것만 같고 설명을 곁들여 작가의 삶까지 이해하고 그림 속 이야기를 찾아내야만 할 것 같다. 어렵다고 느끼는 만큼 멀어진다. 그래서 그림을 설명한 책들이 좋다. 이렇게 이해하면 좋다고 제시해주니 그정도로 지식을 쌓고 교양을 쌓는 느낌이다. 역시..난 속물인가보다.ㅋ 그런데... <<좋은 그림 좋은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가 동양인이면서도 오히려 낯설게 다가오는 동양화를 마치 이웃집 언니가 수다 떨듯 설명해준다. 아니, 설명이 아니다. 그냥 그녀의 이야기에 그림을 갖다붙였다. 이럴 땐 이런 그림이 어때? 하면서. 어려운 용어나 시대 배경 같은 설명은 없다. 대신 이런 상황에서 이런 그림을 보면 참으로 절묘하게 딱! 맞아떨어져 내 느낌들이, 감상들이, 기분이 훨씬 더 극대화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에세이"이다. 동양화..하면 아주 오래된 그림과 수묵화 등만 떠오르니 이 또한 편견인 듯하다. 사실 동양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니 옛그림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모두 동양화라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때문에 최석운님의 <순악질 여사>나 김경민님의 <여행을 꿈꾸는 자> 같은 작품은 참으로 신선했다. 그 외에도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중국 화가들의 작품(보통 하층민들의 삶을 그려낸 작품들)이나 세밀하고 다양한 인물화 등도 재미있다. "지금 내가 옳다고 우기는 것이 꼭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것을 배웠으니 이제 조금은 겸손해질 것 같다. 그래서 그림 공부는 내게 사람이 되는 공부다. "...41p 작가의 경험을 통해 얻게 된 깨달음을 우리는 그림과 함께 배울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무엇보다 동양미술사에 정통한 작가도 공부하듯 그림을 감상하기보다 자신이 느끼는대로 자신의 삶에 갖다붙이고 이해하니 그림에 대한 부담감이 주는 듯하다. "한자의 뜻은 몰라도 좋다. 한자를 그냥 그림으로 이해해도 좋다. 어차피 글자와 그림은 한 어버이의 자식이 아닌가.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도다. 구도는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물상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의 문제다. 구도에는 그림의 주요 소재뿐만 아니라 제시와 낙관까지 포함한다. 또한 우리가 빈 공간으로만 알고 있는 여백까지도 구도에서는 꼭 필요한 주인공들이다."...72p 아이와 함께 박물관에 가면 그곳에서 만나는 그림들은 "역사"이지 그 자체로 그림으로 감상한 적이 없다. 내게는 그저 공부일 뿐 감상해야 할 무엇으로 생각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얘기다. 동양화란, 특히 옛 그림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에는 좀 다를 것 같다. 그냥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내맘대로 이해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