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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이 올 때까지 기다려 ㅣ 동화 보물창고 31
매리 다우닝 한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억양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같은 말을 해도 참 다르게 들립니다. 그냥 친구에게 다정하게 말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저 제목이...동화 속에서 같은 문장을 읽고있자니 등골이 오싹합니다. 아이들 책을 읽으며 어른인 저까지도 긴장하게 되고 푹~ 빠져들었던 적이 한두번은 아니지만... 이 책처럼 이렇게 '무섭다'라고 느껴보기는 처음인 것 같아요.
<<헬렌이 올 때까지 기다려>>는 공포 동화입니다. 그저 무서운 존재(귀신이나 유령, 괴물 등)가 등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상처받기 쉽고 오해하고 갈등이 고조되어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인간들의 심리 묘사가 매우 뛰어나고 때문에 유령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한껏 고조됩니다. 가끔 사람만큼 무서운 건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헬렌이 올 때까지 기다려>>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있는 그런 공포괴담과 연결시켜 아주 흥미롭게 잘 엮었습니다.
몰리와 마이클네는 재혼가정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엄마와 동생과 함께 아빠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아왔지만 엄마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두 사람이 결혼하며 헤더라는 동생이 생겼어요. 하지만 어릴 적 아픈 상처(3살 때 집에 불이 나 엄마가 죽은 사건)를 지닌 헤더는 몰리와 마이클, 엄마에게 전혀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가족들을 이간질하는 헤더의 거짓말 때문에 자꾸만 차가워지는 분위기로 어른들은 시골로 이사 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헤더는... 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책을 읽어나가면서 몰리와의 일치감이 매우 높아 아저씨나 엄마가 몰리에게 하는 행동이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제가 부당함을 경험하고 있는 듯해서 마구 화가 났죠. 어째서 어른들은 각자의 작업에 열중하면서 그렇게도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건지... 때문에 헤더는 아빠에게 더욱 의존하고 새로운 가족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 하지만 헤더가 가진 감정이 분노 뿐일까요?
헤더가 교회 뒤편의 작은 무덤에서 만났다는 헬렌과 엮이면서 헤더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험에서 구해주려는 사람은 몰리 뿐입니다. 하지만 헤더가 몰리에 대한 신뢰를 아직 쌓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엇갈린 감정들이 극대화되면서 책을 읽는 저조차도 매우 감정이 복잡해지더군요.
"시몬스 할아버지가 이야기해 준 소녀처럼 헤더 역시 친구도 없고 불행한, 외로운 어린 영혼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웠다. 나 때문이 아니라 헤더 때문에."...104p
끝까지 헤더를 포기하지 않은 몰리 덕분에 헤더는 헬렌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죠. 그리고 헬렌 역시... 자신이 벌인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한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감정은 매우 복잡다단한 감정이죠. 그저 좋아한다는 감정을 넘어 상대에 대한 신뢰와 의지, 보살핌, 책임감도 지니고 있습니다. 처음 헤더의 거짓말이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헤더의 아빠가 진심으로 헤더를 사랑하고 보살펴 주었더라면...(단지 그저 예뻐하는데에만 그치지 않고) 헤더가 그토록 오랫동안 비밀을 간직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의 입장에서... 한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헤더가, 몰리가, 마이클이 이제는 진정한 가족으로 성장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