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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비밀 정원 ㅣ 레인보우 북클럽 12
T. H. 화이트 지음, 김영선 옮김, 신윤화 그림 / 을파소 / 2009년 6월
평점 :
어릴 적 읽었던 많은 명작 동화들은 아이들이 읽기에 알맞도록 많이 잘려나가고 새롭게 각색된 내용이 많아서 사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게된 때부터 언젠가는 꼭~ 무삭제된 원작을 읽고말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 중 하나가 <걸리버 여행기>이다. 400쪽에 가까운 책을 40페이지나 100페이지 정도로 만들어진 책으로 읽고나면 작가가 의도하고자 하는 깊은 뜻을 알아차리기는 쉽지가 않다.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걸리버 여행기>는 걸리버가 소인국과 거인국을 오가며 겪은 신나는 모험담이다.
내가 <<마리아의 비밀 정원>>을 읽으며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 깜찍하면서도 놀라운 동화책에 <걸리버 여행기> 속 소인국 주민들인 릴리퍼트인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주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동화책이 아닌, 좀 더 제대로 된 <걸리버 여행기>를 읽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부모가 없는 마리아는 빚만 남은 조상들의 성에서 후원자인 목사와 가정교사, 요리사에게 돌봄을 받고 있다. 하지만 목사와 가정교사인 브라운 양은 마리아는 알지 못하는, 숨겨진 양피지를 찾아 마리아의 상속을 빼돌리려 한다. 넓은 영지와 밝은 햇빛이 있지만 제대로 놀 수 없고 가정 교사에게 괴롭힘만 당하는 마리아는 하루하루가 재미가 없다. 그러던 와중 어떤 숲을 뚫고 발견한 동떨어진 섬에서 말리아는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15c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릴리퍼트인들...! 이 놀라운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마리아의 생활은 변하기 시작한다.

마리아가 처음 이 소인들에 대해 취한 행동은... "권력"이다. 어른이지만 작은 이들보다 어리지만 몸집이 큰 자신이 더욱 우세하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그들과의 우여곡절 끝에 마리아는 생명이란, 크기나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존귀하므로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마리아, 이게 멋진 삶의 방식도 성공적인 삶의 방식도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한 가지 믿고 있는 게 있단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작다고 해서 그들을 폭력적으로 다룸으로써 자신을 위대한 존재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얘야, 너는 그냥 너 자체로 위대한 사람이야. 그러니 네가 위대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한테 주인 행세를 할 필요는 없어."...42p
<<마리아의 비밀 정원>>은 그저 소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악당(목사와 가정교사)들로부터 이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희생도 무릅쓸만큼 마리아가 성장하는 모습과 좌충우돌의 재미있는 모험담만을 담은 동화는 아니다. 소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될 때에 이들이 팔릴 것이라는 가정하에 벌어지는 노교수와 마리아의 대화를 통해 "소인은 인간인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가 소인들에게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한 문화와 문화가 만날 때 이해하고 소통하는 과정과, 다함께 힘을 모아 악당을 물리치는 과정이 매우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
<걸리버 여행기>가 풍자 소설인 것처럼, <걸리버 여행기>를 패러디 한 <<마리아의 비밀 정원>> 또한 많은 것들을 풍자하고 있다. 악당으로 그려지는 목사와 가정교사의 직업이 그러하고 그 외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누구 하나 완벽한 이가 없다. 마리아는 나이가 어리고, 릴리퍼트인들은 작다. 노교수는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하며, 요리사는 다리가 아프고, 주지사는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함으로서 주제에 다가가지 못하고 경위는 요통이 심하다. 하지만 이 모든 이들이 한데 모여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여 악당들을 물리치는 모습은 얼마나 통쾌한지!
어딘가에 걸리버가 데려 온 릴리퍼트인들이 살고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면... 나 또한 그들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영국의 역사와 문학이 잘 패러디 된 의미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