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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엄마"라는 말은 참으로 푸근하다. 겉으로 보이는 면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언제나 마음 속으로는 "그리움"이 가득 묻어나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느 존재. 때론 친구처럼 다투고 토라지곤 해도 다시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보듬어주는 어머니. 때문에 수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 드라마의 소재가 되곤 하나보다.
언젠가 TV<인간극장>을 통해 얼굴이 익숙한 한 할머니가 있다. 잊혀지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CF에도 나오셨다. 그들의 이야기를 볼 때면 잠깐 감동했지만 또 그렇게 잊혀졌던 분. 그분의 이야기가 딸의 이야기와 함게 책으로 엮여졌다. TV로 보았던 때보다 훨씬 더 가까이 느껴지고, 훨씬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 이유는... 글자 하나 배우지 못한 할머니가 여든이라는 나이에 늦게 깨우친 글씨로 너무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일기"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95년 <<가슴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로 출판되었던 그 일기들은 이번 책에 큰딸 황안나씨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 가족의 이야기, 할머니의 생활 등을 더 잘 엿볼 수 있다.
여덟 살부터 학교 대신 직조기에 앉아 일만 했다는 홍영녀 할머니는 여든 살이 되어서야 손주의 어깨 너머로 글자를 깨우치셨다 한다. 할머니의 일기들을 읽으면 어떻게 그동안 그 수많은 생각들과 영감, 감성들을 그 가슴 안에 묻고 사셨을까...싶다. 자신의 시집살이에서부터 어린 나이에 잃은 "무남이" 이야기 등 할머니의 모든 이야기에 저절로 공감이 되고 가슴이 아프며 눈물이 난다. 할머니의 글엔 과장이나 가식, 꾸밈이 없다. 아마도 이 진솔함이 그토록 감동적으로 다가오나 보다.
할머니는 시인이다. 잠 안오는 밤 끄적인 글들은 진솔한 일기와는 또다른 감정과 감성으로 살포시 가슴을 적신다. 한평생 살아온 모든 의미들을 담은 이 시들은 할머니밖에 쓸 수가 없을 것 같다.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지나간 모든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당신이 느끼는 모든 감성들이, 뚝뚝 떨어지는 외로움이... 모두 담겨 있다.
"늙고 병들어 그런지 몰라도, 노여움이 많고 서글퍼지기만 한다. 내가 깊은 병이 들어서 그런지, 조금만 눈치가 달라도 마음이 허전하고 마음을 어디에 의지할 데가 없다.
오늘은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기운이 쪽 빠져 지냈다."...220p
엄마보다는 할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났다. 아마도 나이 때문인가보다. 치매를 앓으셨던 할머니는 정신이 없으시니 손자, 손녀, 아들, 딸, 며느리들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도 토라지셨다. 때론 독한 말도 쏟아내시고, 행동에도 거침없으셨다. 하지만 그보다 할머니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먼저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들었다. 홍영녀 할머니의 손자, 손녀들에 대한 서운함, 애틋함이 실린 글들을 읽으니 더욱 그렇다.
아흔 여섯의 할머니와 일흔 둘의 딸은 나이가 무색하게도 우리들 어머니와 딸들의 관계와 하나 다르지 않다. 자신보다는 그저 자식 걱정만 하고 자식 퍼줄 생각만 하시는 엄마가 딸은 야속하고 그 뜻을 몰라주는 엄마는 딸이 야속하다. 그렇게 서로에게 투정부리고 후회하고 다시 감싸 안는다.
"다리 힘 있으실 땐 여행 한번 못시켜 드리고, 이제 몸 불편하신 어머니를 강제로 모시고 다니려는 내가 너무 미련한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93p
"난 왜 모든 게 이렇게 늦는 건지 모르겠다.!
"어머니, 죄송해요!" "...59p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우스운 말 같아도 이처럼 진리가 어디있을까. 양 부모님 일찍 여읜 남편이 엄마와 자주 투닥대는 내게 하는 말이다. 이제 내 나이도 적지 않은데, 난 아직도 내 딸의 나이만큼밖에 안되는 것 같다. 홍영녀 할머니의 글들은 그래서 아직 철부지인 내게 비수처럼 꽂힌다. 좀 더 자주 전화드려야겠다고... 좀 더 찾아뵈야겠다고 막상 얼굴 마주보고 할 말도 할 일이 없어도 그렇게 곁에라도 있어드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내게 "엄마, 나 갈게..." 하고 "엄마, 나 또 올게" 할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