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파이 이야기>의 후속작이 9년만에 출간되었다. 사실 나는 그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무엇이 그토록 감동적인지 잘 몰랐지만 그래도 파이의 말 중 기억에 남는 몇몇 구절들이 있다. 특히 종교적인 그의 입장에 대해서는. 아마도 작가의 표현 방식이 그런 건가보다...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후속작은 어떨까.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파이 이야기>보다 더욱 더 상징적이고 구조적이며 감추어져 있다. 이 "감춤"은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내가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감춘 것이 아니라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기위해 감춤으로서 독자들 각자에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때문에 당나귀와 붉은고함원숭이라는 두 동물의 등장은 전혀 우화적이지 않다. 그들은 동물들의 대표일 수도 있고, 고통받는 삶을 사는 수많은 사람들일 수도 있으며 작가가 의도했던 어떤 한 특정 집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상일 확률이 가장 높을 것이다. 

작가가 등장한다. 첫 소설의 흥행으로 인해 다소 고조되어 있던 작가는 두 번째 작품을 구상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탈고하지만 출판계에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홀로코스트"라는 어두운 주제로 너무나 파격적인(절대로 팔리지 않을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실에 환멸을 느낀 작가의 선택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 그리고 운명의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그에게 도착한 희곡 하나. 

그러므로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책 속의 책...이라는 "액자 구성"을 가지고 있다. 두 가지 이야기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과 함께 이 의문의 희곡을 작가인 헨리와 같이 생각해야 하는 부담감까지 얹힌다. 도대체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헨리를 따라가자니 이 이야기가 비단 "홀로코스트"에서 그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솔직담백하게 받아들여 이 이야기가 무참히 살육되는 동물들만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에도 그 상징과 의미의 비중을 생각하면 조금 애매하다. 때문에 이 작품은 독자가 어떻게 읽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대상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결국  ’홀로코스트’라는 주제로 돌아온다. 

"나는 홀로코스트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썼습니다.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은 이미 끝났습니다. 우리에게는 그에 대한 이야기들만 남겨져 있습니다. 나는 다른 식으로 이야기할 가능성을 타진한 겁니다."...21p

책 속의 인물 헨리는 얀 마텔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가 두 동물을 통해 잊혀져가는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려 시도한 것처럼 헨리 또한 수많은 고민과 함께 홀로코스트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려고 고민했다. 어쩌면 작가는 그 역사를 넘어 지금 이 시대 곳곳에서 자행되는 또다른 홀로코스트에 대해 이야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 역시 독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호러스에 대해 말하는 건 결국 더불어 살기 위한 게 아닐까?"...177p

나 또한 작가가 이 이야기를 고집한 것은 지나갔지만 새로이 기억하고 계속 살아가기 위해, 만족하고 살아가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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