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이라는 관계가 있다.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만나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혹은 한 사람이 또다른 한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때문에 이 관계는 말 그대로 "악(惡)"이다. 두 번 다시 보지 않고 잊으면 그뿐이라고 해버려도 그런 관계의 사람들은 어디선가 또 만나 또다른 상처를 준다. 정말로 이런 관계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해 준 것이 폴 오스터의 신작 <<보이지 않는>>이다. 워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여러 번의 반전을 보여준다. 내용상의 반전이라기 보다는 구조적인 반전이라고 할까. 아마도 그 자신의 인생을 말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967"년 베트남 전쟁으로 군복무에 대한 걱정이 태산같고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젊은이 워커는 평생을 그의 가슴 속에서 "악"으로 존재하게 될 루돌프 보른을 만나게 된다. 같은 이름인 12세기 프로방스 시인 베르트랑 드 보른이 주는 느낌은 뛰어난 시인이자 전쟁광이며 광기를 간직한 자이다. (아마도 이 이름은 그의 성격을 대변하고 있는 듯.) 그럼에도 루돌프와의 첫 만남은 약간은 기괴했지만 워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었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 얽혀들게 된다. "내가 그동안 생각해 왔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나 자신이 그동안 상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덜 선량하고 덜 강인하고 덜 용감산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은 끔찍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이었다.그런 비겁함 때문에 욕지기가 났다."...76p 1967년 봄에 일어난 일은 워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다. 또한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감정을 일으켰으며 절대로 그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불과 몇 주의 만남이 인생에 이토록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만큼 루돌프의 만남은 큰 의미를 지녔고 젊은 워커의 정신적 피폐를 가져왔다. 여기서 이 책의 모든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간단하게 끝날 문제도 아닐뿐더러 줄거리만으로는 절대로 이 책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들여다보자. 이 책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처음엔 분명 워커의 이야기로 시작하였으나 2장에 들어서서는 그의 친구이며 오랜 세월이 흘러 유명한 소설가가 된 "짐"이 등장하여 그의 그간의 행보를 이어준다. 또한 워커의 이야기는 문서화되었고 그 1장의 이야기가 끝났을 뿐이다. 그럼 이 책의 제목 <<보이지 않는>>은 무엇일까. 책에선 "보이지 않는"이라는 단어가 꼭 한 번 나온다. "나는 나의 접근 방법이 틀렸음을 알았다.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96p 짐의 이 충고에 따라 워커의 이야기는 제 1장이 1인칭, 제 2장이 2인칭, 제 3장이 3인칭으로 쓰여지며 그 간극을 점점 멀리하고 있다. 제일 처음 겪었던 루돌프와의 일화는 그럼으로서 잘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사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이야기들이 사실인지(읽으면서 어쩌면 폴 오스터가 짐이 아닐까 상상해보기도...) 혹은 모두 허구인지 독자는 길을 잃고 헤매이게 된다. 이 또한 "보이지 않는" 현상이 아닐까. 사실처럼 보이는 이 모든 일들을 결국은 안개 속에 감춰버렸다. 이야기에 푹~ 빠져 한 글자 한 글자 들여다보는 사이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것이 폴 오스터의 매력인가 싶었다. 책장을 덮고 내게 남아있는 것은, 세실에게도 강렬한 잔상으로 남은 "50개 혹은 60개의 망치가 만들어 내는 음악"(...326p) 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