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이다... "아편"이라는 금기시되는 것을 거리낌없이 드러내어 "고백"하다니. 아무리 19세기에 영국에선 아편이 일상화되었다고 해도 그 중독성과 결과를 생각하면 도저히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만한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그렇기에 이토록 솔직하고 과감하게 고백했으면서도 초판본엔 익명으로 글을 실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토머스 드 퀸시는 왜! 익명으로까지 하면서 자신이 아편쟁이임을 고백했을까. 글은 제 1부에서 머리말에 해당하는 <독자들에게>를 통해 자신이 이 글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이어 <예비 고백>에서는 아편에 중독되기가지의 과정, 처음엔 분명 필요에 의한 복용이었고 8년 동안이나 중독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제어하며 즐거움을 위해 복용했음에도 중독으로 갈 수밖에 없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는 드 퀸시의 자립성과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그의 몸부림에서 시작된 가난과 질병에 의한 것인 듯하다. 제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아편의 쾌락과 고통에 대해 설명한다. 이 부분에서는 아편이 주는 장단점을 여실이 알 수 있다. 어떻게 쾌락을 느끼고 어떤 식으로 고통받는지. 그야말로 직접 경험해보지 못하면 알 수 없는 환상의 세계이다. 드 퀸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아편의 효능(혹은 장,단점)에 대해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통해 얻어진 정보들을 이용하여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해 둔다. 조금씩 중독이 되어가며 무기력해지는 자신을 바라보는 드 퀸시의 내면이 여실히 느껴진다. 따라서 이 글은 아편에 대한 찬성의 글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상식을 지적하고 쾌락을 넘어선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알려주려 함이다. 그로인해 자신의 삶 뿐만아니라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들도 얼마나 큰 고통을 함께 받았는지를 알려주려 함이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 독자들의 관심이 맴도는 진짜 중심은 아편쟁이가 아니라 아편이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쾌락을 가져오든 고통을 가져오든, 아편의 불가사의한 작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목적이 달성되면 이 글의 역할도 끝난 것이다."...164p 책을 읽는동안 작가의 폭넓은 문학적 경험에 놀랄 수밖에 없다. 끝도없이 인용되는 수많은 문구들. 편협한 경험밖에 없는 나로서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 책이 주목을 받고 많은 작가들에게 지지를 받은 이유는, 그의 거침없으면서도 진실한 고백에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런 문학적 소양으로 쌓여진 아름다운 문장들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가 아편쟁이가 되지 않고 그의 재능을 발휘하여 맑은 정신으로 무언가를 썼다면 어떤 작품이 남을 수 있었을까..하는 호기심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