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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명의 아버지가 있는 집 ㅣ 레인보우 북클럽 14
마인데르트 드용 지음, 이병렬 옮김, 김무연 그림 / 을파소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작가의 이름이 중국인이 아닌데, 이 책의 배경은 중국이다. 물론 그런 일은 종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꾸만 작가 이름을 들춰보게 되는 건, 중국의 강, 배 등 주위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서일 게다. 그리고 이런 묘사는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역시나.
전쟁 중이다. 일본 군인들이 마을을 짓밟으며 바다에서부터 밀려 올라왔다. 파오와 가족은 자신들의 마을을 떠나 강을 거슬러 오른다. 헝양에 도착한 가족에게 남은 것은 구멍 뚫린 삼판(강이나 얕은 해안에서 사용되는 작은 배) 하나, 새끼오리 세 마리와 새끼돼지 한 마리 뿐. 일용할 곡식을 얻기 위해 동생을 등에 업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파오를 혼자 삼판에 두고 일을 하러 나가신다. 그렇게 가축들과 남은 파오는 조금 심심한 오후를 보내고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줄에 묶인 삼판은 조금씩 미끄러져 강으로, 자신들이 떠나왔던 그 마을쪽으로 흘러가버린다.
파오는 가족을 잃었다. 무자비한 일본군을 피해 겨우 강을 거슬러 올라왔는데 이제는 혼자 다시 그곳으로 떠내려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파오의 처절한 몸부림이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가축들을 모두 데리고 다닐 수 없어 새끼오리들을 포기하는 모습, "혼자"라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어떻게든 새끼돼지 "공화국의 영광"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모습, 그 돼지로 인해 중국인들 앞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 험난한 산으로 피해다닐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견뎌내려 애쓰는 모습 등이 정말이지 눈물겹다.
"티엔 파오는 공포감을 떨쳐내야 했다. 절벽을 곤두박질치며 달려 길 아래로 내려가려는 유혹을 떨쳐 내야 했다. 몸을 낮추고 움직이지 말아야 했다. ."...75p
가족을 잃은 어린 아이가 어쩌면 이리도 침착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배고픔보다, 일본 군인에게 들킬까봐 혹은 죽임을 당할까봐 느꼈을 공포감보다... 파오에겐 홀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외로움"이 더 컸나보다. 그리고 그의 여정에 처음부터 인연이 있었던 함순 중위와의 만남으로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간다. 그리고 절대 파오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언젠가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내가 아는 아버지라면, 네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거야. 내가 아는 어머니라면, 일본군이 거리에 나타나 대검을 등에 겨누기 전까지는 맏아들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거야."...111p
인연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이기 때문에 이들은 더욱 끈끈한 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함순 중위를 살려주었다는 기특함과 애정을 담아 미군 조종사 60명이 파오의 아버지가 되어주겠다고 했을 때에도 파오는 마지막까지 부모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분명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전쟁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가혹하다. 원하지 않는 가해자와 고통 속에 잠긴 피해자가 생긴다.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정말 견딜 수 없는 고통이리라. "집"이라는 건 한정된 공간을 가리키지만은 않을 것이다.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집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함께 해야 하는 가족의 품이 필요하다. 그 집을 잃지 않기 위해 파오는 한껏 견뎌냈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