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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리 퀸
캐서린 머독 지음, 나선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 소개를 보니 이 책의 후속편이 2권이나 있다는데 우리나라엔 아직 출간되지 않았나보다. 어찌나 아쉽던지... 책 표지에 "청소년을 위한 최고의 책"이라고 버젓이 씌어져 있는데도 그저 가볍게 읽을만한 로맨틱 코미디 소설이라고 오랫동안 굳게 믿은 내가 부끄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그만큼 즐겁고 의미있게 읽었으니 그것으로 위안 삼아야지!^^
슈웽크 농장의 디제이는, 퇴비를 뿌리다 엉덩이를 다쳐 오랫동안 재활 치료 중인 아빠를 대신하여 농장을 꾸려나가고 있다.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해도 디제이가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은 많았다. 잘 하는 농구, 바빠서 제출하지 못한 리포트 때문에 받은 영어 낙제 점수와 이 둘로 인해 멀어져간 대학의 꿈.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디제이에게 "브라이언"이라는 풋볼 제자가 생기면서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암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불평 없이 혹은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채 죽을 때까지 습관처럼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식료품을 정리하고, 자동차를 팔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고, 아이들을 키운다. 아무 생각 없이 어느 날부터 하기 시작한 그런 일들을 한다. 암소가 처음 새끼를 낳고 처음 젖이 나오기 시작하면 곧장 젖 짜는 축사로 걸어 들어가 죽을 대까지 그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어쩌면 산다는 게 다 그런 것일까."...153p
슈웽크네 가족이 내 어린 시절과 무척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시간에도 거의 말 없이, 각자가 하는 일만 하고 그렇게 겉으로는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이는 가족. 실제로 들여다보면 정작 꼭 해야 하는 대화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가족들 말이다. 윈과 빌 오빠가 가족의 연을 끊거나 동생 커티스가 가족에게는 절대 말하지 않는 등의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 가족 사이에선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슈웽크네 가족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브라이언을 코치하면서 디제이는 조금씩 "대화"하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한다.
"브라이언과 같이 있는 시간은 내가 이제껏 필요한 줄 모르고 살았지만 언젠가 다시 필요해질 것 같은 무언가를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이야기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143p
그리고 그 대화들을 통해 디제이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 계속 이렇게 살아가도 좋은 것인지. 학교에 대한 불평을 일삼던 엄마가 막상 교장실을 자신만의 방으로 꾸며놓은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끼고, 지금까지는 오빠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혼선이 생기고, 최고의 베프라고 생각했던 엠버는 언젠가부터 자신을 연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가 터져나갈 것처럼 많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이지만 이제 디제이는 그 문제들을 접어놓거나 피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해결하기로 한 것. 암소처럼 누가 시키는대로, 그냥 굴러가는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행동하기로 한다.
"이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알았고, 그것을 하기로 결정했다. 너무나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뭐라 설명할 수가 없다. 그건 내 결정이다. 내가 그걸 선택했다. 나는 암소가 아니다."...177p
디제이는 전혀 이쁘지도 여자애답지도 귀엽지도 않다. 일반적인 "주류"에서 벗어나있고, 덩치도 크고, 어눌하고, 느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 자신에게 씌운 올가미였다. 이제 자신만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 디제이는 자신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절대 안 돼, 못 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씩 해보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되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동적"이라는 성향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렇지만 원래 다 그러니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자유를 느낀다. 그럼 된 거 아닌가? 디제이의 자아 찾기를 통해 뿌듯해진다. 브라이언과의 알콩달콩 풋사랑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