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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불과 1, 2년 사이에 제주 올레길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수많은 올레 책도 출판되었다. 몇 권의 책을 읽어봤지만 그저그런 책들 사이에 유독 재미있고 정말로 그 길을 걷고싶게 만드는 책은 서명숙님의 책 뿐인 것 같다. 왜? 바로 그 제주 올레 길을 개척한 분이니까. 코스 하나하나마다 깃든 정다운 에피소드와 그 길에서 만나 사람들과의 이야기, 험난한 여정 속에서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는 그 감동적인 스토리를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주도 토박이의 자연스런 제주 방언은 읽는 즐거움까지 더한다. 마치 내 방에 앉아 진짜로 제주 올레길을 걷고있는 듯한 착각. 정말 즐겁다. 그러고나면... 가고 싶어진다. 걷고 싶어진다.
많은 이들이 단 한 번만 올레길을 걸어도 그 길에 푹~ 빠지고 만단다. 도대체 왜일까. 올레길의 무엇이 그토록 도시인들의 발목을 붙드는 걸까. 매일의 생활 속에서 더이상 견딜 수 없을만큼 스트레스 받던 도시인들은 그 길에서 무엇때문에 위안을 얻고 힘을 얻는걸까.
"올레가 없었더라면, 내 인생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이상하게 돌아가는 교육 현장에서 돌아버렸을지도 몰라요. 올레길 걷다 보면 세상을 느긋하게 바라볼 여유와 버텨낼 에너지가 생겨요."...112p
그저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과 여행을 왔다는 들뜸만이 이들을 이토록 바꾸지는 않았을 터이다. 외로우면 외로운대로, 조금 소원했던 가족과 함께라면 함께이기 때문에 아스팔트가 아닌, 흙이나 자갈, 숲길을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가 생기기 때문은 아닐까. 걸으면서 생기는 여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생기는 여유... . 단순노동을 하다보면 들어왔다 나가는 잡생각들 사이에 조금씩 명료해지는 정신처럼 "올레의 걷기"가 사람과의 관계를,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런지. 따라서 올레길을 걸을 때에는 "빠른 완주" 같은 목표를 두지 말고 그저 자신의 느낌과 감각을 따라 그 순간 자체를 충분히 즐기라고 충고한다. 그것이 바로 올레길이라고.
올레는 계속해서 진화 중이다. 나라에서 하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놓은 올레길 위로 아스팔트가 덮이고 공사가 시작되면, 거대한 공룡과 싸우는 이 집단은 또다시 팔을 걷어부치고 새로운 길을, 더욱 아름답고 때묻지 않은 순수한 길을 찾아낸다. 올레길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주변 마을에 도움이 되는 1사1올레나, 재래시장 등과 연계하여 그 지역을 살리는 아이디어를 수없이 내고 있다. 이런 착한 올레길을 어찌 걷고 싶지 않겠는가. 아이가 어려서 다 못걸을 것 같다고, 핑계를 대며 언젠가는....하는 마음이었는데, 서명숙님의 글귀가 나를 붙든다. 어서 떠나라고!
"그대, 떠나기를 두려워 말라. 바람에 걸리지 않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떠나라. 바람이 그대의 친구가 되고, 들꽃이 그대의 연인이 되어주리니. 떠난 자만이 목적지에 이르는 법이다."...17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