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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표지가 참 섹시하다. 책을 읽기 전에도 이 책 전체가 섹시할 것 같은 느낌. 장편인 줄 알았던 책을 들춰보니 모두 10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처음 몇 편은 작가의 스타일에 익숙해지는 데에 할애했다. 뭔가 알 듯 말 듯한 이미지로 다가오는 이 단편들이 조금 낯설었다. 분명 이야기가 있는 소설인데도 읽고나면 남는 건 애매한 이미지다. 주인공들이 벌이는 사건들이 이해되지 않다가 끝이나면 남는 그 이미지로 비로소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몇 편을 읽고나자, 공통된 단어들이 남는다. 역시... 표지에서 예상했던 "사랑, 욕망, 관계, 열정".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녁을 함께 먹고 카드를 몇 번 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은 실제로 아무것도 모른다. 언제나 놀라게 된다.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19p<혜성>
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관계가 어긋나기도 하고 다시 만나기도 한다. 또다른 사랑을 찾기도, 옛사랑을 잊지 못하거나 옛사랑에 대한 기대가 무너짐으로서 실망하고 떠나가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이 작품들 속에 자주 나오는 "시"처럼 흐른다.
"그의 시는 귀에 거슬리는, 긑도 없이 계속되는 아리아였다. 특별한 건 그 톤이었다. 마치 그늘 속에서 써 내려간 듯했다."...95p
그의 단편들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커플들은 과연 이럴 수 있을까...싶은 관계를 맺고, 헤어지고 일상을 보내는데, 사실 제임스 설터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작가가 어디선가 들었거나 실제로 아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전개시켰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이야기들은 그러니까 사실인 동시에 허구이고, 허구인 동시에 사실이다. 그런 리얼리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섬뜩하다.
이 단편집의 백미는.... 아무래도 가장 마지막에 자리잡은 <어젯밤>이 되겠다. 처음 주인공들이 계획하는 것조차도 놀랍고, 마지막에 이어지는 그 반전이라니! 앞의 9편 만큼이나 어둡고 우울해서 더이상 쳐다보고 싶지도 않던 중에 만난 그 극적인 반전은 책 전체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마치 코믹극의 풍자처럼. 몇 편의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한 권의 단편집으로 그 작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작가의 또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