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 ㅣ 푸른도서관 37
김진영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6월
평점 :
각자 개인차는 있겠지만 아마도 "열네 살"이라는 나이는, 청소년이 시작되는 나이로 분류되기 때문에 사춘기를 대변하는 나이가 되나보다. 몸과 마음은 아이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는 스스로 무엇 하나 해낼 수 없고 어른들에게 무시당하고 그러면서도 기대를 받는 나이. 꼭 환경적으로 힘든 상황이 되지 않아도 그저, 그 나이만으로도 힘들고도 힘든 나이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멀쩡해 보이는 환경이라 하더라도 스스로는 이유를 백 가지 정도 댈 수 있을 만큼 집이 "굴속"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서 빨리 탈출하고 싶다고,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그렇지만 실제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더욱 답답하고 미칠 것만 같다.
"이 밤에 엄마는 안방에서, 나는 내 방에서 몸속에 있는 것을 다 내보내듯 울고 또 운다. 버릴 수만 있다면 이런 집에서 사는 나를 버리고 싶다."...63p
유독 이 문장이 나를 잡아끄는 건, 아마 나도 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내가 없어져 버리고 싶다고. 나라면 하리의 환경에서 하리만큼 잘 견딜 수 있었을까.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보지 않으면 그만의 고통을 똑같이 느낄 수 없지만 오히려 이런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오래 방황 하지 않고 오히려 먼저 다가가려 노력한 하리처럼은 못했을 것 같다. 엄마와 예주의 상황을 동일시시켜 그들의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려 노력한 하리가 정말 대견하다. 나라면... 나만의 고통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오히려 떼를 쓰고 나만 봐달라고 소리쳤을텐데......
문장이 매우 짧다. 때문에 탁탁 끊기듯 읽힌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오히려 답답하고 견딜 수 없는 하리의 심리상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하리에게 굉장히 공감이 되었을 것이다. 모순된 어른들에게 대항하고 싶지만 길들여진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버리고 조금씩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 시작하는 하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알 수 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비겁함을 버리고 자신의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 난 꽃잎이 두 개인 범의귀가 불안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꽃의 꽃잎 크기가 모두 같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범의귀 자체로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를 불안하게만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처럼."...153p
자기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자신감이 나오는 걸 테다. 그렇게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고나면 다른 사람들도 인정해 줄 수 있다. 이제 막 자신의 가능성을 찾기 시작한 하리가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하며 몇 년 후의 멋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