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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2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애증의 관계가 있다. 너무 사랑하기에 증오할 수 있는, 혹은 너무 증오하다보니 사랑하게 된 그런 관계. 7년을 복수의 이를 갈며 흰머리를 쫓아다니다보니 어쩌면 산은 흰머리를 증오하다 못해 사랑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호랑이의 혼을 가진 남자로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호령하는 영대 흰머리를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 건지도. 이들의 승부가 끝까지 밀림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이런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날씨가, 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두지 않았다.
"넌 개마고원의 지배자답게 당당해야 하고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빠르고 크고 강해야 한다. 약한 너를 죽이는 것은 내가 원하는 복수가 아니다. 이건 아니다. 난 널 쏘지 않겠다. 쏠 수 없다. 산이 천천히 방아쇠에서 검지를 뗐고 총구를 내렸다. 밀림무정. 개머리판에 새긴 글자 위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62p
경성으로 향하게 된 흰머리와 산은 둘 다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도시에서 적응 해나갈 수 있을까. 하지만 이들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밀림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를, 때론 증오가 사랑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겠다고.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은 일본의 만행이, 그러나 사건의 아래에서 계속해서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나고, 참을 수가 없을 때에... 창경원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열하는 장면은 가슴을 무척이나 뜨겁게 했다. 그저 두렵고도 두려운 존재인 호랑이 앞에서 하나가 되어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만큼 그당시 우리 민족의 마음이 무언가를 원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히데오와 산까지도 당황하게 만든 이 출렁임들은 그당시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고 있는 듯하다.
산은 흰머리를 밀림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 이르러서야 자신만의 복수가 아닌, 흰머리도 흰머리로서의 복수였음을 깨닫는다. 맹수가 사람을 헤쳤을 수도 있지만... 그 전에 사람이 맹수의 영역을 빼앗고 그 가족을 헤쳤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 동물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단 게 문제죠. 다르니까 불편하고, 불편하니까 죽여 없앤다는 그런 생각을 품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잖아요. 인간만 살생을 즐기지 않으면, 동물들은 영원히 지구라는 방주에서 거주할 수 있어요."...110p
어쩌면 정이 없는 밀림이야말로 단순하고 끈끈한 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정"을 요구하면서도 뒤돌아 다른 뜻을 품는 도시에서보다 더욱 더 단순한 "정"을. 들꽃만을 바라보며 순수했던 수를 그렇게 비열하게 만든 것 또한, 호랑이가 아닌 도시의 노름 아니었던가.
호랑이 같은 남자와 다시는 없을 흰머리와의 승부는 끝이 났다. 승부는 누가 이기고 져야 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의 여정을 통해 뜨거운 가슴을, 열정을, 끝없는 추격을 따라 나 또한 그렇게 달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