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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뚝뚝한 남자와 호기심 많은 여자가 기차에서 만났다. 그 강렬한 만남을 뒤로하고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단 하나를 쫓기 위해 혹독한 추위가 매서운 첩첩산중을 누빈다. 그는 왜... 편하고 행복한 삶이 아닌, "철저한 고독과 쉼 없는 긴장"인 쪽을 택한 걸까.
제목에서도, 표지의 일러스트에서도... "남자"의 이미지가 물씬 난다. 아주 오래 전 읽었던 사냥개에 대한 만화책 이후로 짐승과 사람 사이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는 처음인 것 같다. 너무나 남성적인 첫인상에 여성으로서 멈칫한 것도 잠시, 소재만큼이나 강렬하고 강한 문체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섬세하고 서사적 묘사가 뛰어남과 동시에 빠른 전개로 금방 빠져들었다.
산과 개마고원을 너머 조선 최고의 영물이라 여겨지는 백호, 흰머리와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들은 왜 서로를 쫓고 유인하고 확인하려는 것인지. 서로의 영역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살아가던 호랑이와 사람들은, 그 시대 역사의 흐름으로 인해 조금씩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위한 처절한 몸부림, "복수"의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시대가 일제강점기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의 어미를, 아비를 앗아가고 말과 글, 이름까지 앗아가고 조선의 동물들까지 해치려했던 그들의 계획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래서 산과 흰머리가 한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치상황인 것처럼, 산과 히데오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로 그려지는 것이리라.
"산은 떠돌았다, 개마고원에서부터 백두산을 넘어 만주 숲의 바다까지. 흰머리를 죽이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훌훌 털고 새로운 일을 하라는 권고도 받았지만, 산은 자신을 노려보던, 아비를 죽이고 수의 오른팔을 뜯은 백호의 청회색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다. 운명이었다. 둘 중 하나가 죽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비극."...129p
호랑이와 사람과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적은 하나가 아니다. 개마고원 최고의 포수인 산과는 다른 흑심으로 동행하는 히데오나 밀림의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는 비정한 화전민, 그리고 개마고원의 실질적인 주인들인 맹수들까지. 소설은 끝도없는 추격 장면이 지루해질 때 즈음 생각지도 못한 사건을 만들어내고 서정적 묘사와 섬뜩한 표현을 오고간다. 그리고 이젠 "사랑"도 시작되었다. 그들은 과연 무정한 이 밀림 속에서 흰머리와의 한판을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인지. 2권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