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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탑 동물원 그리고 거북이
줄리아 스튜어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런던탑"하면 생각나는 것은, 역사책에서 보았던 귀족들을 감금했던 교도소라는 사실과 그 안에서 벌어진 암투와 배신으로 인해 살해당한 사람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것보다 2~3배나 큰 까마귀다. 영국에서는 길조를 뜻하는 새로 사랑받는다는 그 커~다란 까마귀 때문인지 실제로 그곳에서 처형된 사람의 수는 몇 되지 않아도 억울하고 원통해하며 죽어간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인지... 런던탑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좋지는 않다.
그런데, 런던탑에 한때는 "동물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또한 영국 왕실의 귀중한 보석들이 전시된 곳으로도 유명해 매년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을 찾는다니 참 신기하다. 사람들은 어쩌면 보석보다는 그 옛날 사람을 고문하던 고문 기구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베일에 쌓인 그곳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할 것 같다.
<<런던탑, 동물원 그리고 거북이>>는 런던탑에 상주하며 그 문화유산을 돌보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런던탑 근위병과 그의 부인, 목사, 술집 주인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일반인들에겐 흥미진진한 그곳이 그곳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그들에겐 때론 지루함으로 때론 신경질적으로(그곳에서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자신의 두 번째 책을 내겠다며 서성이는 유령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까!) 때론 슬픔으로 다가온다.
3년 전 아들 마일로를 잃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근위병 발사자르 존스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모으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 부인인 헤베 존스는 남편의 이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 큰 상처를 받아 결국 런던탑을 나온다. 그사이 영국 여왕의 명령으로 가장 오래된 거북이를 기르는 발사자르 존스에게 다른 나라에서 선물로 들어온 여왕 소유의 동물들을 런던탑에서 기르는 책임을 맡기게 된다. 발사자르 존스는 동물들을 잘 돌보며 슬픔을 극복하고 부인과의 사이도 잘 해결할 수 있을까!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아주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 속에는 "일상"이 녹아있다. 아마도 우리의 삶이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희, 노, 애, 락이 녹아나 삶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런던탑에서 상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을 이루고 있는데 때론 비열하고 때론 순진하면서도 자신의 위치를 의심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이 책의 또다른 무대는 부인 헤베 존스의 직장인 런던역 유실물 센터여서 유실물을 찾아주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도 이 책의 재미를 더해준다.
헤베 존스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감정에서, 발사자르 존스는 자신이 맡게 된 동물들(특히 짝을 잃은 알바트로스에게)에게서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남편이 한 번도 울지 않았다는 게 용서가 되지 않아요."
노인이 헤베 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더라도 슬퍼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지요."...367p
런던탑의 동물원은 짧은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모두에게 애정을 쏟을 누군가가 있음을 상기시켰고 누군가에겐 가정의 평화를 위해 까마귀를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 누군가에겐 사랑을 쟁취할 기회를 주었다. 특히... 왕도마뱀에게 먹힌 줄 알았던 쿡부인의 마지막 등장은 통쾌한 복수에 씨익~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