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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신작이 나오면 그 어떤 정보도 필요없이 읽고 싶어지는 작가들이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도 그런 작가들 중 하나이다. 비록 전작인 <<왕국>>에서는 조금 의아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녀의 모토인 "치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했을까, 혹은 계속 같은 스타일의 글로 나를 실망시킬까..하는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결론적으로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바뀔 뿐. <<그녀에 대하여>>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없이 읽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으며 매우 충격을 받았다. 요시모토 바나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구나.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치유"라는 주제에 집중한 듯 보인다. 처음, 이야기에 집중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설은 정확하게 밝히기 보다는 조금씩 보여주며 어렴풋한 이미지를 남긴다.

어린 시절 엄청난 경험을 하고 하루하루 겨우 살아온 유미코에게 쌍동이 이모의 아들 쇼이치가 찾아온다. 쇼이치는 엄마의 유언이라며 유미코가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한다. 그렇게 조금씩 드러나는 유미코에게 있었던 과거와 집안 내력까지... 유미코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비극이다. 종종 현실에서도 이런 비극들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소설 속에선 "마녀"나 강령회 등의 소재를 집어넣어 환상인 듯한 느낌을 준다.
그저 살아있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최소한의 감정과 의식주로만 버텨왔던 유미코는 쇼이치와 함께 과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사람들과 쇼이치가 자신에게 베푼 친절과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여유 등을 맛보며 조금씩 마음이 풀어짐을 느낀다.
"이렇게 목욕할 수 있는 행복만으로도 충분해요, 이모. 누군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요. 나는 그것으로 충분해요. 행복해요. 이제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요."...47p

누군가가 너무나 미워질 때, 온 힘을 쏟았던 어떤 일이 좌절되었을 때, 너무나 사랑하던 누구나를 잃었을 때...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었을 때에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린 시절 그와 함께 했던 추억 때문에, 내가 쏟았던 열정 때문에, 그저 잠시동안이라도 살아있음을 느꼈던 그런 느긋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기억들이 차고차곡 쌓여 내 내면을 이루고 더이상 버틸 수 없는 어려움에 닥쳤을 때에 내게 조용히... 힘 내라고 말해주는 것이라고. 소설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하루하루 열심히 혹은 느긋이 매일 행복한 조각을 찾아 차곡차곡 쌓으라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생각나는 것들. 그런 것들은 아주 슬프거나 기분 나빴던 것들보다는 아주 행복하고 느긋하고 기분 좋았던 것들이다, 분명히.
영문도 모른채 떠돌던 유미코 또한 끔찍했던 기억보다는 그렇게 아주 작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이곳저곳에서 발견하고 자신을 치유해 나아간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작가의 표현에 급작스런 변화가 있어 매우 놀라웠는데 뒤쪽 "작가의 말"을 보고 조금은 수긍이 갔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씌여졌다고 한다. 그 영화를 보고 싶다. 이제 요시모토 바나나의 또다른 작품을 기대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스스로, 혹은 주위에서 치유를 받으며 살아가니 어쩌면 그녀의 작품은 영원한 테마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