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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 몇 장을 읽어보고는 그 강렬함에 이 책은 "미스테리 스릴러"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아주~ 많은 페이지를 읽으며 "성장" 소설이구나... 싶었다가 결말에 이르는 그 문제의 심각성과 소재의 심오함에 결코 "성장"이라고 하기엔(그러니까 과연 청소년들이 읽어도 괜찮은걸까..하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좀 말리고싶은 생각도 든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소설만큼 힘들고 만만찮은 사건들이 "현실"에서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특히 최근엔 어쩌면 이보다 더한 사건들을 매일 뉴스에서 쉽지 않게 접하고 있으므로 차라리 당당히 마주보고 정면돌파를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이 책이, 주인공들이 사건을 중심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모습을 잘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아~ 서론이 길었다. 그러니까.... "사건의전말은이랬다"
한 여자 아이가 죽었다. 아니,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인 재스퍼 존스는 마을에서 문제아로 찍힌 아이다. 그러므로 그의 아지트에서 그녀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범인으로 그가 몰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사실! 때문에 재스퍼는 그 누구에게도 로라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다. 딱 한 명! 너무 똑똑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찰리(또 한 명의 주인공이자 책 속의 화자)를 빼고는.
소설 속 배경은 196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광산촌 코리건이다. 이 마을의 음산한 분위기와 초반의 로라의 죽음으로 인해 이 소설은 더이상 우울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두 아이들이 "진실"을 위해 로라의 시체를 유기하고 더이상 "아이"인 채로 남을 수 없게 되었고 다음날부터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로서 행동해야 한다는 아이들 마음의 그 이중성과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어른으로서의 이중성이 비교되면서 찰리가 느끼는 그 벽돌의 무게 같은 것이 내 안에서도 짓누르고 있는 듯하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의 중심축을 이루는 세 아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왕따"이다. 엄마가 원주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버러지 같은 취급을 받는 재스퍼 존스와 베트남계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제프리, 그리고 책을 좋아하고 똑똑하다는 이유로 약자로 취급되는 찰리까지. 그 중 중심 역할을 하게 되는 찰리는 그야말로 책 속에 묻혀 "환상적인, 상상 속의" 세계에서 로라의 죽음을 계기로 거짓말이 진실이 되고 배반과 음모가 가득한 현실의 세계 속으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세상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어른들은 무엇이 진실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자신이 원하는대로 약자들을 괴롭히곤 한다는 그 부당성에 항거하려 해보지만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개떡 같은 세상이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을까, 아니면 지난 며칠간 그동안 숨겨 왔던 본색을 드러낸 것일까? 이런 식으로 항상 불공평했단 말인가? 저울을 기울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일까? 이해할 수 없다."...209p
"지금 여기서 옳은 것은 무엇이며 정의로운 것은 무엇이며 진실한 것은 무엇일까?"...457p
때문에 찰리와 재스퍼는 진실보다는 그저 "옳은 일"을 선택하기로 한다. 진실과 옳은 일은 때로는 다를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끝도없이 계속되는 혼잡하고 무거운 사건들 속에서도 이 소설을 "성장"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는 재스퍼와 찰리, 제프리의 관계와 그들 각각의 성장, 그리고 그들간의 대화 속에서 찾을 수 있겠다.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제프리와 찰리의 언어유희와 터무니없을 정도로 광대한 그들의 논쟁은 정말로 뛰어나다. 이들의 대화가 그나마 우울하고 음산한 사건이 가득한 소설을 "빛"으로 인도한 것은 아닌지.
세상 속에서, 사회 속에서 내 생각만을 바라보며 살기란 쉽지가 않다. 가끔은 더러운 것도 참아야 하고, 보고도 외면해야 하는 것도 있다. 보기 싫다고 자꾸 내 안에 움츠러만 있으면 안 된다. 찰리와 제프리의 대화 중 "용기"에 대한 논쟁이 있다. 슈퍼맨과 베트맨 중 진짜로 용기 있는 슈퍼히어로가 누구인지. 그리고 찰리는 진짜 용기는 "진실"과 대면하는 일일 거라고 했다. 그들 앞에 일어난 사건들을 진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 후에 어떻게 행동할지는 그들 나름대로의 문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