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이더 하우스 1
존 어빙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 명. 스토리텔링의 대가"
존 어빙이라는 작가 소개에 있는 말이다. 내가 처음 그를 접한 건 <바람난 가족>이라는, 다소 유치한 제목의 영화(원 제목은 <일년 동안의 과부>)였고 제목과는 무언가 어긋나는 듯한 그 영상과 스토리가 잔향처럼 남아있을 때쯤 그 영화의 원작을 읽을 수 있었다. 영화에서 무언가 2%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원작 소설이 해결해주었다. 바로 영화의 뒷 이야기가 소설의 2권에 존재했기 때문인데 역시 존 어빙은 이야기를 참 잘 만드는 작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던 소설이었다.
보통은 어떤 작가가 마음에 들었을 때에 그 다음 작품에도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기대하게 된다. 그렇게 작가를 따라 읽는 소설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러한 나의 기대대로라면 <<사이더 하우스>>는 조금 다르다. 흡인력이 조금 떨어지는대신 생각할 거리가 한가득이다. 하지만 주제는 어렵지않게 전면에 드러나있다.
거의 모든 두 권짜리 소설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존 어빙의 소설 첫 권은 2권을 위한 전초전이다. 이야기를 제대로 잘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 운동 혹은 복선들 같은 느낌. 하지만 스토리나 구성, 스피드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2대에 걸친(어쩌면 호머 웰즈만의 일생을 위한) 그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이더 하우스>>는 고아들과 그 고아들을 남기고 떠나는 여성들, 혹은 고아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잠시 왔다가 떠나는 여성들이 머물던 "세인트 클라우즈"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첫부분의 분위기가 너무나 음산하고 우울해서 조금 괴로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읽을 수 없었던 그 아이들과 그녀들의 이야기. 또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그 황량한 대지에서 그들을 지켜주려 노력했던 닥터 라치와 간호사들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에. 또 한 사람,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있던 그 고아원에서 결국은 다시 돌아오곤 했던 호머 웰즈의 일생이 궁금했기 때문에.
낙태가 옳은가.
잘 모르겠다. 물론 태동이 느껴지기 이전에도 나는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옳지 않다. 하지만 옳지 않다고 믿기 때문에 생기는 그 이후의 문제들은, 그들(남겨진 아이나 그 어미의 고통들)에게 우리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필자는 단지 산모들을 위해서만 병원을 설립한 것이 아니었다. 필자는 부정한 여인들에 대한 사회의 냉랭한 시선을 보면서 그 불운한 여인들에게도 피난처가 있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조용히 반성의 시간을 갖고, 현재의 불행을 영원히 감추고, 미래에는 더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한 용기를 얻을 안식처가 필요하다. 진정한 의사라면 무한히 넓은 아량과 따뜻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110~111p
닥터 라치는 자신이 하는 일이 옳지는 않지만 그 또한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때문에 너무나 사랑하는(자신의 아들같이 생각했던) 호머에게 이 일을 넘겨주는 것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하고 대립했다. 호머는 그 일이 합법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옳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머는 자신의 기회를 찾아 떠난다. 고아가 아닌, 진짜 영웅같은 친구와 그의 연인을 따라 의사의 조수가 아닌, 사과 농장의 일꾼이 되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의 곁에 있기 위해. 호머는 우울한 세인트 클라우즈를 떠나 모든 것을 잊고 새출발을 시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