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아내>> 저자의 두 번째 사랑이야기!"라는 문구가 보이시는지. 보통 저자의 첫 번째 책이 마음에 들면 두 번째 책도 믿음을 갖고 선택하게 된다. 비슷한 주제와 전개를 구사하는 작가가 있는 반면,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가도 있다. 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는 즐거움은, 그래서 매우 크다. <<내 안에 사는 너>> 1권을 읽는 동안은 도대체 이 책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일지 탐색하고 상상하고 알아보는 시간이었다. 1권을 모두 읽었는데도 전체 책이 의미하는 것의 30%도 알아내지 못한 것 같아 2권이 정말 궁금했다. 그렇다고 1권의 흐름이 너무 느리거나 지루한 것은 아니다. 글 속에 독자를 잡아두는 흡인력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로 아우러지는 그 무언가가 없어 책을 읽는 나는 그저 열심히 추리를 해 볼 뿐이다. "유령"의 존재를 믿는가. 나는 나름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좋아하고 감성적인 부분보다 이성적인 부분에 치우친 인간이지만 어두운 밤 어디선가 무언가가 나타날 것 같은 공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내 내면에서는 이 유령의 존재를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안에 사는 너>>는 제목만 보면 무척이나 달콤할 것 같은 로맨틱 소설일 것 같지만 사실은 쌍둥이들의 존재와 그들간의 미묘한 대립, 감정 등의 관계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보다 "유령"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느닷없는 주인공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 이 소설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윗 세대 쌍둥이들의 관계에서부터 그 아래 세대로 이어진 쌍둥이들의 대립과 자립으로 이어진다. 나 자신이 쌍둥이가 아니고 내 아이 또한 쌍둥이가 아니기에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서로를 얼마나 의지하며 서로에게 얼마만큼 환멸을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다른 "나"를 바라보며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라고 추측은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또한 세 쌍둥이로 태어나 끊임없이 자아에 대해 고민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1권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알려주지 않던 사건 전개는 2권에 이르러 무척이나 스피디하게 전개되고 사건은 극에 달한다. 전혀 상상치 못했던 상황. 너무나 쇼킹했다. 도대체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을 정확히 어떤 부류에 넣을 수 있을까. (스포일러가 될까봐 어떤 줄거리도 써넣지 못하겠다. 조금이라도 언급했다가는 읽는 재미를 확~ 깎아먹을 듯하다.) 이 책이 정말로 사랑 이야기라면.... 사랑보다는 "집착"과 "광기"에 가깝지 않을까. 또한 아주 평범한 쌍둥이들의 보편적 이야기를 다룰 줄 알았던 나의 예측을 무참히 깨트리고 쌍둥이들은 단지 이 소설 속에서만 온전히 그 캐릭터가 살아났다. "엘스페스는 두 사람이 부러웠다. 다음 순간 그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에디는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이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이제 너무 늦어 버렸다. 한때 중요해 보이던 것들이 지금은 우습고 하찮게 생각되었다."...2권 225p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문장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보편적이며 바람직한 결말을 끌어낼 수 있는 문장인 듯하다. 하지만 작가는 이 문장을 선택하지 않은 듯하다. 자! 결말이 궁금하신지....^^ 그럼 일단 책을 들고 읽고 시작하시라. 그리고.... 절대로!!! 멈추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