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요새의 아이들
로버트 웨스톨 지음, 고정아 옮김 / 살림Friends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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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것을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그 참상을 잘 상상할 수가 없다. 어떻게.. 얼마나 더 상상하든 실상은 내 상상보다 훨씬 더 잔혹하고 힘든 것이겠지...라는 생각 밖에는. 3.1절이 돌아와도 혹은 6. 25나 8.15같은 날이 되어도 그저 쉬는 날이구나... 라는 것 이상의 것을 요즘 아이들은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언젠가 TV 뉴스 인터뷰 중 초등학생 아이에게 3.1절이 어떤 날이냐고 묻는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한 장면이 기억이 나서 이 <<작은 요새의 아이들>> 속 아이들이 더욱 대견하고 멋져 보였다. 

폭격 사이렌이 울리면 각자의 집에서 만든 방공호 속으로 기어들어가 몇십 분, 몇 시간을 꼼짝 않고 있어야 하는 답답함보다는, 언젠가는 그 폭격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그리고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래도 하루는 지나가고 또다른 하루가 오고 그러한 생활이 계속된다. 아이들은 이런 끔찍한 전쟁 속에서도 그들만의 재미를 찾아낸다. 이른바 "수집품"이라고 불리는 전쟁의 한 조각 조각들을 찾아 폭격에 맞아 엉망이 된 잔해 속이나 폭격기의 잔해들을 뒤지는 것이다. 

<<작은 요새의 아이들>>은 이제 막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 아이들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다. 과연 희망이 있을까...싶은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수집품으로 최고가 되고 싶은 욕심에 독일 병사의 시체 곁에서 기관총을 떼어내고 자신들만의 요새도 만든다. 처음엔 그저 장난이었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아지트 속에서 점차 우정을 발견해내고 규칙과 타협점을 찾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아간다. 어른들이 봤을 때에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장난 같아 보일 수도 있는 이들의 행동은,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고, 친구를 지켜주기 위한 동기였으며 어른들의 모순을 뛰어넘는 결단력 있는 행동이자 용기였다. 비록 그 과정이 위험하고 옳지 못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오히려 주저하고 회피하려는 어른들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은 기관총 포장을 벗기고 그 위에 할아버지의 유니언 잭을 덮은 뒤 모두 기관총에 손을 대고 니키를 돌볼 것을 맹세했다. 그 맹세를 통해 카파레토 요새는 놀이터 이상이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이제 적은 독일만이 아니었다. 존을 뺀 모든 어른도 일종의 적처럼 되었다."...141p

어른들도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생각과 오히려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나몰라라 하고 자신들만의 일로 돌아가는 어른들에게 배신감을 느낀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완벽한 요새와 적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아이들이어서 자신을 지지해주는 어른들에게는 죄책감을 느끼고, 비록 적군 독일병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을 이해해주는 어른에게는 기꺼이 손을 내밀 줄 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면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비롯한 가족과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신들의 부모들보다 더욱 옳은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증거일 것이다. 

"나도 그래. 하지만 우리는 각자 의무가 있어. 전쟁이 끝나고 보자. 그러면 우리는 모두 카메라트가 되는 거야."...266p

독일병과 아이들은 적과 적으로 만났지만, 이들은 그 관계를 넘어 우정과 신뢰의 관계를 만든다. 전쟁은 나라의 이념끼리의 충돌이지만 그 속에서는 한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있고,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루디와 아이들 서로서로에게 느끼는 강한 유대감은 아이들에게 커다란 밑거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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