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일의 겨울 사거리의 거북이 10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동찬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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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느정도 자라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정도로 자랐을 때, 내게는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계셨다. 외할머니는 엄마가 어렸을 때, 친할아버지는 내가 두 살 때에 돌아가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존재는 손자, 손녀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 분들로 두 분 모두에게 똑같은 애정을 가졌어야 함이 맞겠지만 외할아버지에게만큼은 너무나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무뚝뚝하셨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함께 한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갈샨과 바이타르처럼 말이다. 

엄마 다알라의 계속된 유산으로 이번 임신 기간만큼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마을과 뚝 떨어진 광야에서 홀로 살아가는 할아버지에게 맡겨진 갈샨은 앞으로 견뎌야 할 다섯 달... 153일이 끔찍하기만 하다. 열 살이 되도록 다섯 번밖에 만나보지 못한 할아버지. 게다가 그는 아무도 없는 거칠고 드넓은 몽골 황야에서 옛날식 유목민의 생활을 혼자 해나가고 있다. 자신의 동생이 태어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그 153일의 겨울 동안 손녀 갈샨과 바이타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드넓은 황야를 오가는 수단인 말 타는 법부터 가르치는 바이타르가 갈샨은 무척이나 못마땅하다. 갈샨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할아버지 바이타르가 사라지면 나타나곤 하는 하늘 위 검독수리의 존재뿐이다. 저렇게 높은 곳에서 바라본다면... 엄마가 계신 곳까지 모두 보이겠지! 검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엄마를 느낀다. 바이타르와 갈샨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 바로 이 검독수리이다. 대대로 아들에게만 전수된다는 검독수리 사냥을 바이타르에게 배움으로서 갈샨은 할아버지를 점차 이해하게 되고, 바이타르 또한 갈샨을 손녀로서 인정하고 사랑을 베풀게 된다. 

단순히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서 애정의 깊이가 깊어질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 시간 동안 함께 사건을 겪고 경험을 쌓으면서 차곡차곡 애정이 쌓이게 되는 것일게다. 153일의 겨울이 없었다면 갈샨과 바이타르가 서로를 이해하려고나 했을까. 갈샨은 편리하지는 않은 삶이지만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바이타르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삶을 배웠을 것이다. 

"이곳을 떠났던 그 긴 시간 동안 갈샨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173p

책 전체를 통해 느껴지는 몽골의 혹독한 겨울이 무척이나 인상 깊다. 바이타르와 늑대의 대결은 갈샨이 바이타르에게 읽어주는 <노인과 바다>와 오버랩됨으로서 주인공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빛나는 것은, 번역자의 덕이다. "왁실덕실", "해뜩", "사느래졌다", "수굿했다", "생게망게" 등 잘 쓰이지 않는 우리말을 찾아 쓰려고 애쓴 노력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어들로 인해 이 책이 얼마나 특별해 지는지.... <<혼불>>의 최명희 선생님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찾아 쓰시는 분으로 유명하지만 번역가가 이렇게 손수 우리말을 찾아 쓰려고 노력한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아름다운 책이다. 언어가... 책 속의 몽골 풍경이... 할아버지와 손녀의 이해가.... 그리고 동물과 사람과의 교감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구나 싶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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