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되어 온 존재,
클론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통해
삶과 죽음, 인간의 존엄성을 진지하게 성찰한 문제작”

…이라는 책 소개글을 읽고 떠오른 것은 영화 <아일랜드>와 책 << 쌍둥이별>>이었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인간의 존엄성을 성찰했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스칼렛 요한슨과 멋지구리한 이완 맥그리거의 스릴 넘치는 액션에 치중되어 있었고, <<쌍둥이별>> 또한 클론이 아닌 형제의 장기 이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아무래도 가족 간의 사랑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나를 보내지 마>>는 좀 더 구체적인 SF 소설로서 미래에 우리의 난치병과 불치병을 막을 수 있는 절대적인 위치의 클론을 앞세워 그들의 인생을 조명하고 있을까?
 
난해하다. 이 책을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며 우주선이 떠다니고 의술의 한계는 없는, 일반적인 SF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대략 난감할 것이다. SF 소설이면서 SF 소설이 아닌 책… 그것이 바로 <<나를 보내지 마>>이다.
 
서른 한 살인 캐시는 십일 년째 간병사로 일해오고 있다. 소설은 캐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헤일셤을 추억하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모르고 지나쳤던, 혹은 알면서도 묵과했던 사실들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캐시와 루스, 로라 그리고 한나 등… 캐시와 친구들의 어린 시절은 무척이나 평범하다. 유년시절을 기숙사에서 보낸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만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기증”이니 “근원자”이니 하는 단어들만 뜬금없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밑도끝도 없이 나타나는 단어들 때문에 평범한 유년 시절은 그 저변에 깔린 무언가를 추적하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이 이 소설을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헤일셤에서의 루스와 캐시의 관계는 어린 여자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우정과 질투 사이를 오고간다. 매일 밤 마음 속 깊은 이야기까지 터놓을 수 있는 우정을 과시하지만 그와 동시에 남들에게 친구보다 더 잘 보이고 싶고, 더 우수해 보이고 싶은 그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표현하고 있을까 내내 감탄했다.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가 위대해 보이는 이유이다.
 
헤일셤에서는 아이들의 특별한 예능 능력을 장려했고, 그것들을 가려 뽑아 “화랑”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보내곤 했다. 아이들의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숙 학교와 별반 다를 것은 없었지만, 유난히 외부와 차단되어 있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지식 이외의 것은 전혀 제대로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라온 아이들은 그런 환경에 대해 특별히 의구심을 갖지 않았지만, 캐시와 토미만은 달랐다. 캐시는 항상 주변을 관찰하고 그 사람이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이였고, 토미는 자신만큼은 가지고 있지 않은 예술에 대한 재능을 어떻게 해야 향상시킬 수 있는지 몰라 루시 선생님과 직접 부딪혔기 때문이다. 이 둘은 어려서부터 서로가 알고 있는 사실을 더하고 추론하고 가설을 세우고 상황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세상에서 자신들의 위치와 헤일셤의 위치, 진실에 대한 탐구를 늦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또한 아직 어린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놓친 부분이 많았고, 각자의 생활과 생각으로 바빠 진짜 진실을 파헤치지는 못했다.
 
“너희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미래가 정해져 있지. 그러니까 더 이상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얼마 안 있어 헤일셤을 떠나야 하고, 머지않아 첫 기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해.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 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119p
 
헤일셤에서 감추어진 진실은 도대체 무엇일까. 캐시가 이야기 한 기억으로 볼 때 이 아이들이 아픈 이들의 장기 이식을 위해 만들어진 클론임은 분명하다. 어쩌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사실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신들이 태어나게 된 배경과 역할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책을 읽는 나로서는…. 정말이지 충격이다.
 
누군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옳은가!
 
분명 이 책이 클론에 대한 것임을 알고 시작했음에도 내가 이렇게 충격을 받은 것은… 아마도 작가가 구도적으로 만든 미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냥 머리 속에서만 상상하던 클론이라는 이미지와 이 소년 소녀들의 이미지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캐시와 토미, 루스 등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옆집 아이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들 또한 하나의 삶을, 정신을,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단지 클론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다른 삶도 인정되지 않고 기증하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이 상황에 어찌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작가는 이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저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고!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척, 내 편한 대로 하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되도록 너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너희가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이지. “…360p
“나는 어린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과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걸 보았어. 그걸 가슴에 안고 그 애는 결코 자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 나는 그 장면을 바로 그렇게 본 거란다.”…372p
 
소재 자체는 SF이지만 전혀 SF답지 않은 내면을 지니고 있는 이 소설은, 캐시와 루스, 토미를 통해 그 나이의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를 상당히 자세히 묘사하며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한 그와 더불어 이들이 다른 클론들보다 더욱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고통 받는 클론으로서의 자아 정체성과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결코 가볍지 않지만 책을 놓을 수 없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가 궁금해진다. 영화 <남아있는 나날>의 원작자라니 더욱 그렇다. 사람이 생각할 때 그저 지나치기도 하는 그 마지막 하나까지 아주 잘 묘사할 수 있는 작가인 것 같다. 그의 또다른 작품을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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