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리뷰를 쓰기에 이보다 더 난감한 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책이다.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가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부터 난 이 책을 알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언젠가는... 책을 읽어보겠다고 마음 속으로 정했다. 그 기시감은 이 비슷한 영화를 언젠가 TV에서 보았다고 굳게 믿었던 내 기억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 영화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 영화에서 내가 기억하는 부분은 마치 미하엘이 한나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방과후에는 한나를 만나러 뛰어가는 부분과 겹쳐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영화의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더 리더>>가 내게 난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총 3부로 나뉜 이 소설이 1부에선 말도 안되는 통속적인 로맨스 소설처럼, 2부에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유대인과 그들을 감시했던 정치범 사이의 재판을 그린 법정 소설로, 또 3부에선 두 주인공 사이의 내면 갈등(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만한 이기적인 면과 이상적인 면 사이에서의 갈등)을 그린 심리 소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소화하기엔.... 내겐 좀 어려웠다. 

미하엘과 한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나의 몫이 아니고, 이들의 사랑이 진짜일까, 아닐까를 고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으며 아이를 가진 엄마 입장에서 한나가 미하엘에게 상처를 입힐까 걱정하던 마음이 소설의 후반부로 흐를수록 같은 여자로서 상처받은 한나에게로 옮겨지며 안타까워했다. 

"왜일까?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43p

미하엘을 계속해서 따라다닌 이 질문은 한나를 온전히 믿지 못해서였고, 그가 아직 너무나 어렸기 때문이었으며 한나가 나이가 더 많은 사람으로서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자신이 배신해서 한나가 떠난 줄 알고 상처받았던 미하엘은 소설의 2부에 들어서 그녀가 숨겨오던 진실과 마주하며 사실은 자신의 배신 같은 것은 전혀 한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음을 깨닫고 더욱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그 재판을 통해 미하엘은 한나를 더욱 더 이해하고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의 내면에서만이었지만... 

한나를 인간답게 하는 것은 자존심인가. 어째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밝히지 않아 더 큰 고통을 짊어지려 하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감추기 위해서 늘 싸워왔고 또 싸웠다. 그것은 실제로는 힘찬 후퇴일 수밖에 없는 전진과 실제로는 은폐된 패배일 수밖에 없는 승리로 이루어진 삶이었다."...144p
어쩌면 한나로서는 자신의 수치를 밝힘으로서 조금은 덜게 될 그 죄가, 그렇다고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님을 알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르겠다. 

미하엘이 한나의 재판을 접하며 이해하게 된 것은 비단 한나만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전후세대로 태어나 그들이 짊어져야 할 그 전세대의 유물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압박감, 수치심과 죄책감까지이다.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로만 이해하던 전쟁의 참상을 자신이 사랑했던(혹은 계속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가해자로서 선 재판을 지켜보며 그는 더욱 가깝게 이 전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그녀를 배반하고 부정했기 때문에 그녀가 내게서 떠나버렸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녀는 단지 전차 회사에서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까 봐 두려워 도망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쫓아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가 그녀를 배반했다는 사실을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유죄였다. 그리고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145p

한나의 죄가 가볍다고,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고 무죄가 될 수 없듯이, 작가는 전후 세대에게 같은 해석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나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이고, 나라 자체를 대변한다면... 미하엘은 한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유죄가 되듯이 전후에 태어나 직접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았어도, 나라를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그들을 나무랄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죄가 성립된다고.

그렇기에 미하엘은 한나를 아직 사랑하면서도 한발 떨어진 그곳에서 그녀를 지켜본다. 책을 읽어주는 의식을 계속했고, 그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지만 직접 찾아가거나 편지를 보내지 않음으로서 과거의 그녀 모습으로 이상화시킴으로서 자신만의 이기적인 사랑을 완성하려 했다. 한나가 끝까지 그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그렇기에 더욱 슬프고 안타까운 사랑이 되지 않았을까. 

소설은 미하엘 입장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한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어 조금 아쉽다. 어째서 한나는 그토록 어린 소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인지. 평생을 숨겨가며 감추었던 것을 극복한 후에, 왜 인생의 마지막엔 그녀만의 방법이 아닌 방법을 택했는지. 영화를 보면 궁금했던 의문들이 조금은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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