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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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달 동안이나 9~10페이지(책 본론의 시작부분이며 핀란드 국민들이 왜 우울증을 많이 앓는지를 설명한느 부분) 이상을 나아가지 못하고, 책장에 다시 꽂았다 꺼냈다를 반복하다가 어제부터서야 드디어 그 이상의 진도를 나갈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싫어했던 그 앞부분은 그게 끝이었는데 그부분을 지나가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기발한 자살 여행"이라는 무언가 유머러스하면서 재미있을 듯한 제목과 달리 정말로 우울한 그 앞 페이지를 견딜 수가 없었나보다. 이 책... 끝까지 우울하면 어쩌나..싶어서. 

몇 번의 사업 실패로 인생의 어떤 의미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렐로넨은 드디어 자살할 결심을 하고 자신이 죽을 장소를 찾아 한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 막 자살을 준비하여 죽음에 문턱에 들어서려는 켐파이넨 대령의 목숨을 구해주게 된다. 이 기막힌 우연은 "자살" 시도 의지를 막았으며 두 사람에게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가 된다.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은 인생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몰아쳐 극한의 상황을 만들곤 한다. 그 때 그의 곁에 그를 위로하고 공감해줄 그 누구도 없다면... 그 사람은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에 가까이 갔던 이들은 새로운 삶의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하게 되고 새로운 삶에의 의지를 다질 수도 있다. 렐로넨과 켐파이넨 대령이 그러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경험에의 동질감을 가지고 서로를 위로했으며 어쩌면 조금 더 이 시도를 미루고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이 "집단 자살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외로움과 실의에 빠지게 되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고 무기력해진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끔찍하게도 언제나 혼자 있는 경우에는, 일상적인 단순한 일을 해결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84p

해가 잘 비치지 않는다는 핀란드에서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며 그 중 많은 이들이 자살을 선택한다고 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핀란드의 날씨, 풍경, 문화에서 이 나라가 갖고 있는 문제점까지 아주 잘 표현해내고 있는 듯하다. 이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대사를 통해, 누군가의 동화 이야기를 통해, 또는 그들의 행동 자체를 통해 아주 잘 드러난다. 굳이 설명을 해주지 않아도 이 다소 황당한 사건들을 통해 핀란드라는 나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600명에 이르던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둘 혹은 셋이 이끄는 인솔자들의 세미나를 통해 100여명 정도로 줄고 이제 행동으로 옮길 자살 여행에는 약 30명만이 함께 행동하게 되는데 이들은 함께 동거동락하며 조금씩 자신들의 아픔을 치유해 나아간다. 하지만 가장 극적인 변화는 렐로넨과 켐파이넨 대령이 겪었던 체험처럼 죽음을 눈앞에 두는 것이다. 죽을 뻔한 경험! 

"내 마음속에서 삶의 의욕이 꺼지지 않고 희미하게 불타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제 죽음을 향한 길에서 그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지 뭐요. 나는 오늘 아침에 눈을 뜬 순간, 죽을 생각을 하자 마음이 심란해졌소."...226p
"그러나 그동안에 나머지 사람들은 과연 굳이 집단 자살을 감행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결국 세상은 살 만한 곳이며, 고향 핀란드에서 엄청나 보였던 무제들이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아주 사소해 보인다고 서서히 깨달았다. 같은 운명을 짊어진 동료들과의 긴 여행은 다시 삶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유대감은 자의식을 굳건하게 다져주었다. 그리고 좁은 생활 영역으로부터 벗어나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자살자들은 새롭게 삶의 재미를 발견했다. 초여름에 생각했던 것보다 미래가 훨씬 더 밝게 보였다. "...312p

현실의 일에서 복잡하고, 머리가 아플 때... 나도 여행을 떠나고 싶다. 잠깐 지금의 일을 놓고 조금 멀리 떨어져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가족들과 사랑과 행복을 함께 누리다 오면... (그렇다고 현실의 일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해도) 그래도 조금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유럽 전역에서 소설을 패러디한 즐거운 자살 희망자들의 모임이 생겨나기도 했다니, 정말로 기발한 자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죽을 결심을 하고 살라는 말이 있듯이, 아주 조금의 희망이 있다면... 살아볼만한 가치가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역시나 죽음보다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삶의 의욕이 되어주었으면 싶고, 내게도 삶의 의욕이 되어줄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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