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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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지금까지 중에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느냐고 묻는다면... 난 언제나 "임신 중"이었을 때를 꼽을 거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고 보살피며 그 아이의 밝은 웃음과 평온한 하루하루에도 행복을 느끼긴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충만한 느낌을 받았을 때는 임신했을 때였다. 내 뱃속에서 어떤 생명을, 그것도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품고 있다는 그 생각과 배가 불러오면서 느껴지는 태동으로 인한 기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 행복은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잎싹도 바로 그 느낌을 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철창 안에 갇혀서 자신이 낳은 알이 매일 도난당하는 것을 바라보는 심정을 어찌할 수 있을까. 문  틈새로 보이는 마당이 잎싹에겐 천국과 같은 장소였다. 사료만이 아닌 땅에서 나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낳은 알을 빼앗기지 않고 스스로 품어서 병아리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그 행복...을 잎싹은 느껴보고 싶었다. 

"잎싹"...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그래서 결국 향기로운 꽃을 피워 내는 게 잎사귀니까."(...13p) 그 잎사귀처럼 자신도 무언가를 하고 싶어서 지은 이름. 

청둥오리 나그네의 도움을 받아 죽음의 구덩이에서 살아나온 잎싹이 자신이 상상해오던 마당의 생활을 하지 못하고 버림받았을 때에도 잎싹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어떤 알 하나를 만나게 되고, 마치 자신이 낳은 알처럼... 잎싹의 소원을 이루어줄 알이 되어 그 알을 소중히 품게 된다. 

"어제와 달라진 게 없는 듯해도 잎싹에게는 특별한 아침이었다. 들판 구석구석에서는 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 누가 죽는가 하면, 또 누가 태어나기도 한다. 이별과 만남을 거의 동시에 경험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슬퍼할 수만은 없다. "...88p

나그네의 유언이 지닌 뜻을 나중에야 알아차린 잎싹은 자신의 "아가"와 나그네의 충고를 받아들여 초록머리를 훌륭하게 키워낸다. 하지만 오리는 오리이고, 닭은 닭인 것이다. 초록머리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잎싹은 더이상 자신이 품을 수 없는 아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 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152p

비록 자신이 낳은 알이 아니었지만 잎싹은 사랑을 담아 알을 품었고, 자신을 희생하여 초록머리를 지켰다. 그런 잎싹을 누가 "엄마"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소망을 간직했던 잎싹. 철망에서 그리던 마당으로 갔고, 그 마당에서 나와 그토록 원하던 알을 품어 훌륭한 청동오리로 만들었고, 초록머리를 통해 날고 싶은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잎싹은 마당을 나와 생활하며 한층 성숙해진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노력했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줄도 알았다. 

아이는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모의 부속품이 아니다. 독립된 인격체로서 아이를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어도 가끔은 나도모르게 내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아이를 위해서...라는 이유가 깔려있지만 어쩌면 그것 또한 핑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잎싹이 초록머리를 너무나 사랑하여 자신만의 아이로 남겨두고 싶었지만 결국은 청둥오리떼에게 돌려보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아이를 놓아줄 때가 올 것이라는 걸 잘 알고있다. 지금은 그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가끔 있지만...^^ 막상 그때가 되면 잘 떠나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엄마"라는 이름이 얼마나 커다란 이름인지... 그 이름이 주는 의미와, 무게...를 되새겨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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