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의 순례길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 - 서른 살 오핸로 혼자 걷는 1,400km
김지영 지음 / 책세상 / 2009년 9월

요즘엔 걷기 여행이 대세다. TV에서부터 신문, 책,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가 걷기 여행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니 나도 왠지 한 번쯤은 걷기 여행을 떠나줘야 할 것같은 부담감이 생긴다. 워낙에 저질 체력이라 하루에 얼마나 걷겠냐... 싶기도 하지만 천천히 걸으며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그래봤자 남편과 아이겠지만...) 담소를 나누고 차를 타며 하는 여행에서는 맛볼 수 없는 "무언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생각만으로도 무척이나 설레인다. 

내 주변엔 걷기 여행을 특히나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이나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의 둘레길에 관심도 많고, 이야기도 자주 해 주어서 나도 얼마간은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에도 그런 길이 있다니... 정말 걷기 여행이 대세이긴 한가보다.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는 그 일본의 순례길, "시코쿠의 순례길"을 걸으며 쓴 여행기이다. 사실 책을 읽어가며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소설 <<8일째 매미>>에서였다. 소설에서는 섬에 나타난 하얀 옷을 입은 "진짜" 순례자들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그 아래 덧붙임에 "일본 시코쿠 지방에 '시코쿠의 88개소 영장'이라 하여 홍법대사의 유적지인 여든 여덟 곳에 시로쇼조쿠(전신을 흰색으로 감싼 복장) 차림으로 참배를 다니는 유명한 순례코스가 있다 ” 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게 복장을 갖추고 순례를 다니는 사람을 ‘오핸로상’ 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순례자임을 나타내는 복장으로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흰색옷을 입는 조금은 특이해 보이는 그들의 복장을 보며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들이 걸어가는 기나긴 수행의 길을 함께 하면서는 곧 웃음이 사라지고 만다. 함께 숙연해지고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서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면 무언가 인생을 한번쯤 돌아보고픈 그런 생각이 드나보다. 이미 안정되었을 줄 알았던 그 나이에 무엇하나 이루어 놓은 것 없다는 불안감! 저자 역시,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일본으로 떠나는 시기가 딱 그 때였다. 저자는 특이하게도 영화과 출신도 아니면서 영화와 관련을 맺고 있단다.(뭐... 사실 전공대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며 별 특이하게 생각되지는 않지만..) 이 책도 다큐멘터리 작업과 같이 병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책과 함께 “ 영화” 란에도 같은 제목의 영화 소개가 있었다.(아직 개봉을 하지는 않은 듯, 자세하지는 않다) 문득 영화로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렇게 일본으로 떠나고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기록하며 그녀가 걸어낸 길 이야기는 따뜻하고 읽는 이에게 그 따뜻함을 전염시킨다. 문득... 세상에 온기가 불어넣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무작정 순례길을 걷는다고 자신의 고민이, 혼란스런 마음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코쿠의 순례길을 걷는, 저자가 만난 많은 젊은이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을 걷고 나서는 새로운 시각이 생기고,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지는 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걷기 여행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를 걷는가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물론 걷기에 좋은 길이 있음에는 분명하지만, 그 장소보다는 만나는 사람들, 그곳에서 겪은 경험, 그곳의 풍경을 바라보며 하게 된 생각... 등이 모여 자신만의 순례길을 만들어가리라고 생각한다. 올 가을 그렇게도 남편과 함께 걷는 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벌써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아쉽다. 내년 봄이 되면.... 아이와 남편과 나, 셋이서 손 꼭 붙잡고 걷기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