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분명 저자는 "이정명 작가"인데, 소설 속의 배경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이며 등장인물들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외국 이름의 자들이다. 한국 작가가 쓴 이 외국 소설 같은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왜 그렇게 적응이 쉽지 않았는지.... 뭐, 한국 작가라고 꼭 배경이 한국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배경보다는 이 낯선 이름들에서 더 큰 위화감을 느꼈나보다. 우리 이름이 주는 이미지와 다른 나라 이름이 주는 이미지, 그리고 그 이름들에 대한 기대가 엄연히 다를텐데 이 소설이 과연 그 기대감에 잘 맞추어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던 것이다. 

사건은 흥미롭다. 웃는 얼굴로 피살당한 한 여인의 시체. 그리고 곧 그녀와 연관된 또 다른 사람의 죽음. 안개 속에 뒤덮인 도시 침니랜드와 뉴아일랜드를 오가며 세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그 희생자와 연관된 사람들의 죽음이 잇따른다. 여인들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사건을 오가며 침니랜드와 뉴아일랜드 간의 위화감을 알 수 있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두 종류의 사람이 살았다. 기회를 잡은 자들과 놓친 자들. 주류에 든 자들과 남겨진 자들. "...65p
"이 도시는 두 얼굴을 지녔어요.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어둠 속에서 죄를 짓고 사람을 죽이지만 안개가 사라지면 해협의 물결처럼 아름답게 보이죠. 눈부신 미녀와 흉악한 야수. 어떤 쪽이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일까요?"...114p

이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도시의 비밀을 들추려는듯이 사건은 일어난다. 하지만 사건의 전말은 점점 모호해진다. 심리분석관인 라일라는 어느것 하나 정확하게 추리해내지 못하고, 살인3계 경찰들 또한 현실과 타협하기 급급하다. 주인공인 듯 보이던 매코이도 영웅으로서 활약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좀 더 확실하게 범인에게 다가가지도 못한다. 책을 읽는 독자로서는 책의 중반부터 범인이 누구일지 유추할 수 있었던 것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작가는 아마도 흥미로운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보다도 "매코이의 의식"을 따라가고 싶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제멋대로이고 때로는 거짓된 정보를 담고 있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컸고, 마지막 매코이를 따라가는 결론 부분은 조금 부족해 보인다. 따라서 끝으로 갈수록 사건이 벌어지는 이 도시의 안개처럼 모호하고 불확실해졌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있으면서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개연성과 당위성이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아는 심리분석관(미드에서 충분히 보아온)만큼의 역할을 해주지 못한 라일라의 캐릭터가 조금 더 강하고 자립적인 인물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너무나 여성적이고 의존적으로 그려져서 전혀 주인공답지 못했다. 작가의 새로운 시도였지만 여러 군데에서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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