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째 매미 사건 3부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장점숙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부터 계획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딱 한 번만 보고나면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에 그 집을 방문했던 것. 매일 아침 부인이 남편을 역까지 바래다주러 나간 20여분 동안 아이가 집에 혼자 있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 6개월 정도 된 아이는 울고 있었다. 하지만 기와코가 안자 울음을 그치고 웃었다. 그 웃음이 기와코를 받아들여주는 듯 해서, 그렇게 기와코는 아이를 안고 도망을 친다.

<<8일째 매미>>는 총 2부로 되어 있다. 1부는 기와코가 아이를 유괴하여 도망쳐 다니는 3년 반 동안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2부는 그로부터 18년 후의 그 아이, 에리나(혹은 가오루나 리브가)의 이야기이다. 1부에서는 기와코와 가오루가 경찰의 수사를 피해 달아나는 과정이 너무나 긴박해서 그 밖의 사소하거나 자세한 부분들에 대한 의문을 일일이 따져볼 수가 없다. 

처음에는 유괴라는 범죄는 그 어떠한 변명이나 이유가 있다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도둑맞은 그 부모나, 친부모를 모르고 자라는 아이의 인생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하지만 기와코와 가오루의 애착관계를 바라보며 나도모르게 이해하고 인정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나 자신도 당황스럽다. 아마도 가오루에 대한 기와코의 마음이 친부모 이상으로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기와코가 가오루를 자신의 아이라고 때때로 착각하듯이 읽는 나도 이들이 친부모자식 간이라고 착각하게끔 만드는 작가의 능력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내막은 이해되더라도 유괴는 어쩔 수 없는 범죄이므로 결국, 기와코는 잡히고 가오루는 에리나가 되어 친부모에게 돌아가게 된다. 

2부는 에리나가 지구사를 만나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며 자기자신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유괴되어 유괴범에게 자랐던 아이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했던, 친부모에게로 돌아왔으나 이미 가정은 다른 평범한 가정이 아니었던, 그 모든 것이 모두 자신 탓이었던것만 같았던 에리나의 이야기이다. 

매미는 7년을 땅 속에서 보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딱 7일만 살고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8일째에도 살아남은 매미가 있다면 그 매미는 오래 살아남았기 때문에 기쁜걸까? 아니면 모두 죽고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남았으므로 불쌍한걸까...

"기억나? 7일 만에 죽은 매미보다도 8일째에 살아남은 매미가 더 불쌍하다고, 네가 그랬잖아. 나도 줄곧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구사는 조용히 말을 잇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8일째에도 살아 있는 매미는 다른 매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으니까. 어쩌면 보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을 꼭 감아야 할 만큼 가혹한 일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319p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에, 평범한 삶을 살지는 못했던 주인공들. 그들은 모두 8일째를 살고 있는 매미일지도 모른다. 이성적으로는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들은 실수를 하고, 그 실수를 되풀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허물을 하나 하나 벗어가며 성충이 되는 매미처럼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래도 희망은 있고,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리라. 

"기와코는 걸으면서 두 손을 하늘에 비쳐 봤다. 무슨 까닭일까? 남을 미워하다가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지르고, 남의 선의에 기대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버리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동안 모든 것을 잃어버린 빈껍데기가 되었는데도, 이 손 안에 아직 뭔가 쥐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기를 안아 들었을 때 두 손 가득 퍼지던 따스함, 부드러움, 묵직한 무게감, 이미 잃어버린 것이 아직 이 손 안에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343p

이 책을 시작하며 어떻게 유괴범이 주인공일 수 있는지 격분하던 내가, 이 책의 주인공 모두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쁘다. 즐겁지만은 않은 내용이지만, 마지막이 희망적이어서 기쁘기도 하다. 8일째를 살아가는 매미처럼 가장 힘이 들고, 끝도 없이 절망적일 때에도 다른 매미들이 못 보는 푸른 하늘과 초록 나무를 볼 수 있어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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