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공들
아일린 페이버릿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게 하려면 책을 읽을만한 환경을 만들어주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 첫번째 환경은 단연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자기 책만 읽는 엄마를 둔 7살짜리 딸은 어이없는 눈초리로 '그만 좀 읽고, 나랑 좀 놀지?'라는 텔레파시를 팍팍! 보내오곤 한다. 내가 책을 읽을 때, 옆에 나란히 앉아 자신의 책을 읽는 딸아이의 모습을 바라고 상상해 보건만... 진실은 엄마 책을 들여다보며(절대로 보아서는 안되는 책까지..) 관심을 보이거나 말을 걸며 방해하기 일쑤이다. 아마도 우리 딸은 내가 읽는 책들에 질투를 느끼나보다. 

<<여주인공들>>의 페니 또한 그렇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페니는 자기네 민박집에 묵으러 오는 소설 속 여주인공들에게 엄마를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여주인공들이 묵으러 오다니? 늘 선망해 바라마지 않던 여주인공들을 현실에서 마치 언니처럼, 친구처럼, 동생처럼... 만나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판타스틱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페니에겐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힘들고 고뇌에 차 있을 때 잠시 쉬러 오는 여주인공들을 보살피는 엄마에게 페니는 언제나 뒷전이었던 것이다. 

착하고, 순종적이었던 페니는 열살을 넘어 열세 살이 되자 자신들만 생각하고 징징거리고, 오만방자한 여주인공들에게 완전히 질리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변화는 페니가 사춘기에 돌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페니를 화나게 한 것은 자신의 엄마뿐만 아니라, 침실까지도 빼앗아간 데어드르(<비애의 데어드르> : 신화)가 나타났을 때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처음, 페니가 선택한 것은 "반항"이다. 자신을 내버려 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기로 한 것!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결과는 악한일지도 모르는 코노르를 만나게 된 것과 세상사람들 잣대대로의 인정을 받기 위한 정신병원행이었다. 단지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행동이, 자신의 삶에 들어온 여주인공들에 대해 맞서게 되고, 더 나아가 세상과 맞서는 과정을 밟게 된다.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뱃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흐느낌을 누르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이제 더는 엄마의 어린 딸이 아니라는 혼란과 분노가 나를 휩쌌다."...56p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어야하는 여주인공들의 출현으로 인해 페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그러한 삶을 살아왔던 어머니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엄마 아래 편안한 생활을 영위해 왔던 때와는 달리, 정신병원에서의 홀로된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불편하고 부조리하다. 그러한 때에 페니는 그동안 여주인공들과의 소통과 경험들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내재되어 있던 것들을 떠올려 현명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여러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귀찮기만 했던 여주인공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페니는, 엄마의 삶도, 자신의 삶도 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페니의 아빠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부분에선 조금 생뚱맞았지만 전체적으로 여주인공들이 내 삶 속에 들어온다는 설정이 무척 재미있다.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위로를 받으러 온다면... 잘 위로해줄 자신은 없다. 아마도 나는 미성숙한 페니처럼 여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꾸려고 설득하고 있지나 않을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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