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방불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기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프롤로그부터 정신이 없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이야기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도 모두 다르다. 언젠가 이런 식의 플롯을 가진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제목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이 책처럼 미스테리였고, 전체 흐름 중 중요한 몇 장면이 맨 앞부분을 차지하고서 강한 임팩트를 준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이다. 

하스다시 구로누마. 이름 그대로 검은 늪이 있는, 음울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곳에서 한 가족 네 명이 홀연히 사라지는 "행방불명" 사건이 일어난다. 게다가 5년 전에는 이 늪의 반대쪽에 자리잡은 또다른 일가 네 명의 살인사건이 있기도 한 곳이다. 하지만 그 사건의 범인을 잡지 못한 것처럼, 이 가족의 실종도 다른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 9월 초에 사라진 이들은 벌써 2개월째 어디에서도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또 한 사건! 도쿄에 사는 한 추리소설가가 만원 전철에서 성추행범으로 오해받은 뒤 그 여성(알고보니 남성이었지만)에게 사과받을 목적으로 미행하고서 알아낸 사실이 있다. 최근 도쿄에서 벌어지는 괴한 습격 사건의 범인이 이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은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고 정식으로 사과받으려고 했던 미행이 결국은 자신의 추리소설을 완성시키기 위한 범인의 미행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난 때는 8월 말이다.

소설은 이 두 사건이 번갈아 교차하면서 서술된다. 다키자와가 실종 사건의 뒤를 쫒는 르포라이터 아기라시 미도리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과 함께, 도쿄의 괴한 습격 사건의 범인의 뒤를 밟아가며 자신의 추리소설을 완성시켜가는 추리소설가의 이야기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시간도 화자도 다르기 때문에 이 두 사건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일가족 실종의 전말은 어떻게 되고, 괴한은 누구인지를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추리는 해보지만 자신은 없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아!!!" 하는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것이다. 

단란하게만 보였던 가족이 실종된 후, 아기라시 미도리의 취재로 드러나는 이 가족의 뒷모습은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빚문제, 아내의 불륜과 딸의 혼전임신까지... 한 가족 내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가족"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다키자와가의 집 옆에 위치한 구로누마가 암시하는 것은 바로 이런 단란하게만 보였던 가족의 검은 내막이 아니었을까. 또, 자신의 추리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경찰에 바로 신고하지 않고 범인을 미행하는 자는 어떠한가. 이 사람은 범인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비슷한 상황에 몰아넣고 범인의 광기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가.

끝까지 읽지 않으면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끝까지 읽고나서도 몇 번이나 앞이나 뒤를 뒤적거린 후에야 이 사건들의 전말을 알 수 있게 된다. 매우 흥미진진한 소설이었다. 이렇게 눈으로 영화를 보듯, 소설을 끌어나갈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순서를 뒤섞어 플롯을 짜듯, 두 사건이 일어나고 결국은 만나지는 이 순서를 여러 화자와 시간으로 나누어 뒤섞어놓았다. 그래서 읽는 이는 추리하고 싶어도 마지막까지 읽지 않으면 추리를 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은 처음이었는데, 그의 "~자(者)" 시리즈는 아직 한국에서 출판되지 않은 것 같다. <<행방불명자>> 안에서 이 "~자" 시리즈가 언급되어 읽어보고 싶었는데, 무척이나 안타깝다. 그만의 서술트릭을 조금 더 만끽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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