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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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며 매일처럼 전쟁을 치른다. “이건 준비했니? 저건 챙겼어?” 내가 어렸을 적 다짐했던 엄마의 모습은 이런 잔소리꾼이 아니었다. ‘난 엄마처럼 아이에게 잔소리만 하지는 않을 거야!’ 언제나 감정적이고 듣기 싫은 잔소리만 하는 엄마가 너무 싫었다. 어째서 다정한 한 마디, 친밀한 스킨십을 해주지 않으시고 바쁘다고, 덥다고 내치기만 하시며 잔소리만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면 그때서야 어른이 된다고 했던가! 아침마다 아이와 씨름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내 어린 시절의 엄마와 닮아있는지 가끔씩 화들짝 놀라곤 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서운하다고 느꼈던 엄마의 행동들이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는 것이 조금은 고통스러웠다. “너”라고 불리는 큰딸의 모습이 나와 너무 비슷해서… 엄마의 전화에 짜증내고, 큰소리치며 대들기도 하고, 매일같이 내 전화를 기다릴 엄마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시하기도 한 나. 내 딸과 나의 모습을 보며 엄마와 나의 관계를 이해는 했어도 엄마에게 좀처럼 다가가지 못하는 나이기도 하다. 

아빠와 싸우시거나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으실 때마다 엄마는 내게 전화를 하신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 그런 온갖 감정 쏟아 부을 데가 없어 그러시겠지… 이해를 하다가도 왜 두 분은 연세가 드시고도 아직까지 싸우시는지, 이제는 좀 더 사이좋게 지내시면 안 되는지, 왜 꼭 화풀이는 나에게 하시는지… 부아가 치밀 때가 있다. 그럼 꼭 이 책의 엄마와 큰딸처럼 서로 큰소리로 싸우다가 전화기를 쾅! 내려놓고 1주일씩 전화를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둘 다 어린애 같다. 그러면서도 내가 엄마를 이해해드리기보다는 왜 엄마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건지 모르겠다며 퉁퉁 부어있었다. 

엄마와 큰딸의 관계가 엄마와 나의 관계로 오버랩 되었기 때문일까…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고,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냥 최루성 소설이기 때문에 운 것이 아니다. 자꾸만 “이 얘기가 나의 이야기라면… 우리 가족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순진한 시골분도, 자식에게 100% 헌신하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놓으신 분도 아니지만 그런 분이라도 “치매”라는 무서운 병 앞에선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들의 무시와 무관심 속에(언제나 엄마들이 겪는 고통이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얼마나 큰 병을 숨기며 지내올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 에필로그의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라는 문장으로 이어질 때 내 가슴이 찌르르 저려온다.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엄마를 잊어버렸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힘들 때, 곤란에 처했을 때, 외로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엄마이면서 정작 내가 가장 행복할 때, 기쁠 때는 엄마를 잊는다. 그 모든 기쁨과 행복이 모두 내 공인 양 생각한다. 

“아내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당신에게 형철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였다. 베어지거나 뽑히기 전에는 어딘가로 떠날 줄 모르는 나무.”(…149p)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잠시 엄마를 잊고 있어도 언제나 엄마는 그 자리에 계실 거라고. 아직은 건강하시니 괜찮을 거라고…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엄마가 안 계시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갑자기 생길 상실감과 죄책감을 어찌해야 하나?《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신경숙님도 그 점을 이 책에 쓰고 싶으셨나보다. 우리가 깨닫고 난 뒤엔 너무 늦을 수도 있으니 늦기 전에 잊었던 것들을 찾으라고 말이다. 찾은 뒤엔 진심으로 ‘어머니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돌볼 수 있는 시간’을 만끽하라고.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온통 늦은 후회와 죄책감뿐인데, 이 글을 읽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잊어버렸던 엄마를 되찾는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더 늦기 전에 엄마를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릴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이 흐르고, 엄마를 찾지 못했는데도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많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엄마를 찾지 못해서 아직도 힘들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은 그들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들만의 생활 속에서 엄마를 기억하고, 엄마를 찾아낸다. 각자의 방식으로.


“이젠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사실은 모두 여기에 스며들어 있다는데, 느끼지 못할 뿐 예날 일은 지금 일과 지금 일은 앞의 일과 또 거꾸로 앞의 일은 옛날 일과 다 섞여 있다는데 이제 이어갈 수 없네.”(…235p)

그렇게 엄마는 떠나지만 엄마에게 받은 것들을 자양분 삼아 아이들은 엄마의 삶을 이어갈 것이다. 나도 그러할 것이다. 엄마에게 받은대로 내 딸에게, 그리고 다시 엄마에게 돌려드리고 싶다. "희생"을 희생이라고 생각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되돌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 딸에게 주고 싶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자신은 없다. "사랑"이라는 면에서는 난 언제나 엄마보다 못한 딸이니까. 그래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랑한다고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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