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에타
마틴 클루거 지음, 장혜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19세기 의학 분야는 독일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19세기 전반에는 생물체가 세포로부터 성립된다는 사실을 "피르호"가 세포병리학으로 발전시켰고, 후반에는 탄저병균에 이어 결핵균, 콜레라 병원체까지 발견한 "코흐"와 디프테리아 혈청 요법을 완성한 "에를리히"와 "베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혼자서만 연구하여 결론에 도달하고 혼자서 이룩한 업적이겠는가. 그들 주위엔 많은 협력자들(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이 있었고, 제자들이 있었으며, 함께 실험을 도와준 연구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네 사람 주위에 언제나 한 여상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헨리에타"이다. 

그녀는 실존 인물인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진리"를 밝혀내고자 하는 불타는 열정을 가진 모든 여성들이 바로 헨리에타이기 때문이다.  

행복했던 한 가정이... 아이가 태어나며 불행해졌다. 아이의 생명은 엄마의 생명을 앗아갔고, 아버지는 부인을 잃은 슬픔에 아이를 탓하고, 절망으로 빠져든다. 가족의 사랑 대신 병원의 의료 기구와 책, 환자들을 돌보며 자란 아이. 그녀가 헨리에타이다. "엄마를 죽인 아이"라는 누명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는 피르호와 코흐 아래에 그들의 마스코트로 자란 덕분일까? 헨리에타는 현미경을 통한 세포와 세균...의 세계에 무한한 열정을 가지게 된다.

헨리에타는 더럽고 음울하고 온갖 죄가 무성한 자신의 자리인 뒷골목이 아닌, "꼬리가 달린 것과 꼬리가 달리지 않은 것, 손이 세 개인 것과 손이 백 개인 것, 눈이 많은 것과 눈이 하나인 것, 눈 하나가 전부인 존재" (...44p)의 세계를 동경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이었다. 훌륭한 업적을 이룩한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그들의 마스코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다. 여성은 분수를 지켜야 하고, 대학에 갈 수 없으며 좋은 남성을 만나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여성의 존재 이유이다. 

"나와 신과 세상을 저주하며 왜 하필이면 나냐고, 인류를 존속시키는 일이 그렇게 즐겁다면 왜 그들이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여자는 묻고 남자는 말한다. 피르호는 말해요. 시간과 세포를 제외한 다른 건 모두 이류라고, 종속적이라고. 현자 솔로몬은 말해요. 여성은 제 의무를 지키라고." ...316p

하지만, 그 어떤 제약들이 헨리에타를 막을 수 있을까. 남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길을 막는다면... 그녀는 헨리에타가 아닌, "헨리"가 되고자 한다. 

"지식은 물고기보다 수명이 길지 않고, 꿈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지 않으며 시간표에 따라 운행되지도 않고 미래는 미친 듯이 달려갔다."...245p

헨리에타가 헨리가 되면서까지 추구했던 것은... 자신의 신념이며 존재 이유이다. 그저 "진리"를 밝히고자 하는 그 끝없는 열망을 남성들은 이해해주지 않는다. 사회 통념으로 묶어 그녀까지도 무시해 버리는 것. 이것은 비단 "남성들" 뿐만이 아닌, 그녀의 지지자이자 평생의 연인인 카시니와 평생의 우정을 지키겠다던 여성 율리아에게도 해당된다. 그리고 어쩌면 헨리에타 자신까지도. 

하지만, 시대는 조금씩 변한다. 누군가가 조금의 물꼬를 트면... 조금씩 조금씩 그 입구가 벌어지듯... 헨리에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모든 꿈과 열정은... 그녀의 딸 "안나"에 이르러 이루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널 보면 내 분자들이 떠오른다. 난 너와 같았어. 너와 똑같지는 않았지만. 아니 똑같았을까?"
"엄마가 나예요. 그리고 나는 엄마예요." 안나가 말했다. ... 407p

그녀에게서 또다른 그녀에게 이어지는 꿈과 열정들. 굳이 남성을 통해 이루지 않아도 대에서 대를 거쳐 우리의 지위는 그렇게 조금씩 진화되어 왔다. 안나에게는 대학의 꿈이 열리고, 자선병원 이래 최초의 메스를 쥔 의사가 된다. 

강을 건너 또다른 곳으로 가고자 하는 여인이 있었다. 가난과 억압과 비난 속에서도 자신의 꿈과 미래와 열정만을 가지고 강을 건너려고 노력했던 그 여인은 바로, 우리 어머님들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세대는 이어지고 세계는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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