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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예이츠 지음, 유정화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결혼하고나서 누군가에게 들었던 얘기 중에 "권태기"에 관련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결혼한 첫 해를 제외하고 3, 5, 7...하는 식으로 홀수해에 부부 사이에 권태기가 찾아온다는 이야기. 처음엔 웃어넘겼지만 어! 계산해보니 거짓말처럼 잘도 들어맞는다. 하지만 이렇게 자주 권태기가 찾아오고 가정이 위태롭다면 어느 누가 견딜 수 있을까. 

가정..혹은 부부 사이의 관계 또한 작은 사회와 같아서 나 스스로의 노력과 상대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이해 없이는 잘 이어나갈 수가 없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역시나 많은 시행착오와 여러 번의 고비가 있기 마련이다. 뭐, 아직도 우리 부부는 함께 배워나아가는 중이지만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완벽한 부부가 있다. 프랭크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똑똑하고 유머있고 교양까지 갖추었고, 에이프릴 역시 알아주는 연극대학을 졸업한 미모의 "여성"이다. 이들 두 부부는 남들이 그러한 것처럼 어느 정도 안정된 가정을 만들어 뉴욕의 교외에 아담한 집을 사서 이사했다. 60년대 미국 중산층의 젊은 부부들이 당연히 밟아야할 수순을 그대로 거쳐온 그들은 또래의 다른 부부들보다 더 안정되고, 더 교양있고, 더 잘 갖춘 듯 보인다. 이른바 "미래"가 예약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거기서 안주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들 부부는 지금의 이 안주된 삶이 주는 권태감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시도를 한다. 헌데, 이 새로운 시도는 "부부가 함께"....가 아닌, 에이프릴 혼자만의 생각과 의지에서 비롯되었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혼 전 이들이 꿈꾸었던 이상은 분명 둘 공통의 꿈이었는데, 이미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한 프랭크는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자신이 그토록 따분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말해왔던 회사의 일에서도 벗어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신경 쓸 일도 없고, 별다르게 일을 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의 월급이 꼬박꼬박 나오는 회사이니 지금의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조금의 불편함도 없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그런 남편이 정말로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부의 목표가 달라진 것이다. 

부부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된다. 두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며 나아가지 못하고, 서로가 바라는 이상이 달라질 때,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다를 때, 이때만큼 괴롭고 힘들 때가 없다. 그럴 때 서로에게 보내는 비난과 멸시...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만 한다. 이렇게 이들의 권태는 시작된다.

때로는 이들 부부가 보여주는 대화 방법(끝까지 가는 막말...)에 화가 나기도 하고, 서로의 의견을 끝까지 침착하게 들어주고 거기에 다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줄 때엔 감탄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이들이 각자 택한 행동은...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너무나 끔찍하고 놀라운 결말....!

"절대적으로 정직하고 절대적으로 진실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그것은 반드시 홀로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445p
그 무언가를 한 에이프릴이 나로선 전혀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녀로서는... 그 전날 밤 자신에 대해, 프랭크에 대해 깨닫게 된 새로운 사실들에 대한 결론이 그 행동밖에 없었다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녀에게 무한한 동정이 인다.

부부 사이에는 비밀이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서로에게 하는 말에 "진실성"은 담겨있어야 하지 않을까.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찼던 프랭크와 에이프릴의 대화를 보면... 이 부부가 이런 결론을 낼수밖에 없었지 않았을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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