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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스티븐 갤러웨이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실제로 일어난 일이 있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려고 선언한 보스니아. 하지만 보스니아는 내전으로 이어진다. 어째서.... 한 나라가 또다른 나라로부터 독립하려는데, 자기들끼리 싸울 수 있는지... 여기에는 민족주의가 얽혀 있지만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이 내전 중에 일어난 한 사건. 1992년 4월 5일부터 1996년 2월 29일까지 계속되었던 "사라예보 점령" 중에 있었던 일. 정확히 1992년 5월 27일 오후 네시... 여러개의 박격포탄이 바세 미스키나에 있는 시장 뒤쪽에서 빵을 사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덮쳤다.
그 날... 22명이 죽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이곳의 유명한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는 이 22명을 기리기 위해 매일 그 장소, 같은 시간에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는 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 전쟁의 한가운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세 사람의 이야기이다.
애로... 그녀는 저격수다. 아니, 처음부터 저격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군과 아군쪽에서조차 두려워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살인 무기이다. 그녀가 아무리 "적군을 없애는 일"에 대해 이유를 찾고,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일을 처리한다해도 그녀가 어떤 사람을 죽인다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자신이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라고...그렇게 억지로 위안을 찾을 뿐이다.
케난... 가족을 살리기 위해 4~5일마다 식수를 얻으러 먼 장거리 여행을 한다. 그는 그때마다 길거리에서 죽을까봐 두려움에 떤다. 바로 옆에서 포탄이 터져 여러 사람이 죽고, 다쳐도 .... 그는 그저 자신과 가족을 삶을 위해서만 움직일 뿐이다.
드라간... 자신 이외의 사람들과는 벽을 쌓고 지낸다. 그들과의 소통이 전쟁에 더 불을 지피기라도 하는 듯.
전쟁이란... 이런 엄청난 소용돌이 속일 것이라고 쉽게 짐작될 정도로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 한 문장, 문장이 마치 영화처럼 전쟁의 참상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망신창이 속에서 살아가는 각각의 사람들 마음까지도...
그들의 마음을 돌려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22명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매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 어떤 공격이 있을지 신경쓰지도 않고 같은 음악을 연주하고 돌아가는 첼리스트의 음악소리... 때문이었을까.
"첼리스트는 어떤 변화를 바라거나 상황을 다시 바로잡으려는 게 아니라,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리라. 에미나의 모친이 던진 농담에 등장하는 낙천주의의 정의가 그랬듯, 상황은 언제든지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황이 악화되는 걸 막아줄 수 있는 게 단 하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159p
어떤 형태로든 애로, 케난, 드라간은 각각 첼리스트의 음악을 들었고, 그 음악을 매개체로 그들 자신 속에 있는 "인간다운 삶"을 찾아내었다. 드라간은 더이상 혼자만의 성에 갇혀 지내지 않고 그 벽을 깨고 나와 그 주위의 사람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케난 또한 두려움 속에서도 매일의 일상을 치러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애로... 가장 강철같은 용기를 갖고있는 여인. 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전사다. 그녀가 그녀답게 있을 수 있는 선택을 한 그 순간! 애로는 알리사가 될 수 있었다.
가장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이들이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 그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허우덕거리기 보다는 무언가 조금 더 나은 것을... 자신들의 자존심을... 그리고 고귀함을 지키기를 선택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었던 것은... 아마도 첼리스트의 <아다지오> 선율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나서 <아다지오>를 들으니.... 목이 메이도록 슬프다. 이 곡이 이토록 슬픈 곡인줄은 몰랐다. 이제 <아다지오>는 내 안에서 또 다른 이름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를 갖고 다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