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아이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실제 사건이야말로 소설가의 좌절이다."라고 필립 베송이 말했다고 한다. 작가가 차마 상상할 수 없는 것, 또 상상했더라도 감히 글로 쓸 수 없는 것이 실제 사건이라고 말이다. 정말 그런 것 같다고 느끼는 요즈음이다.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듯한 무시무시한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정말 오싹할 지경이다. 그나마 몇 년이 지나더라도 범인이 잡히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10월의 아이>>를 읽고나니 더욱 그렇다.

1984년 10월 16일, 프랑스의 산골 보주의 강에서 네 살짜리 사내아이가 손발이 묶인 채 익사체로 발견된다. 네 살짜리 어린아이를 기르고 있는 집에서라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한 이 아이의 이름은 그레고리이다. 그레고리의 부모는 몇 년 전부터 "까마귀"라는 인물로부터 협박 전화와 편지에 시달려오고 있었다. 까마귀로부터 복수가 끝났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강에서 아이가 발견된다. 경찰 및 검사, 판사는 집안의 소소한 일까지 모두 알고 있는 까마귀의 정체가 베르테 일가 중 한 명일 것이라 생각하고 필적 검사와 음성 검사를 하지만, 매번 다른 결과가 나오는 엉성함으로 결국 범인을 찾지 못했고,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첫번째 용의자 라로슈(그레고리 아빠 피에르의 사촌)가 피에르의 총에 맞아 죽고, 두번째 용의자로 그레고리의 친모인 발레리가 지목되기도 한다.

그렇다. <<10월의 아이>>는 1984년부터 프랑스를 뜨겁게 달구었다는 "그레고리 사건"을 바탕으로 씌여졌다. 애초에 그라세 출판사가 <이것은 실제 사건이 아니다> 시리즈를 기획하여 필립 베송에게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하여 탄생했다. 작가는 한 번은 3인칭 시점으로 신문의 기사를 보는 듯하게, 또 한 번은 엄마 발레리의 일기 형식으로 이 소설을 꾸려 나간다. 

범인 까마귀가 그들 가족의 일을 너무나 자세히 알고 있으므로, 베르테 일가의 친족 중 한 명일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까마귀는 왜 이들을 이렇게 증오했을까? 이 이유가 정말 너무나 터무니없다. 프랑스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 작은 마을 사람들이 그렇듯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을 고수하려고 하고, 조금 튀는 것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런데 피에르 부부가 그 마을에서 유난히 튀는 부부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하기를 바랬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자라온 시골 마을의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랬다. 이런 부부의 생각들은 다른 이들로 하여금 질시와 반목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아이를 죽일만큼의 이유가 되는 것일까?

초동 수사에서 제대로 된 정보와 증거를 수집하지 못한 경찰들은 어이없게도 많은 부분을 놓쳐버렸고, 이런 실수들은 10년이 지나는동안 매번 다른 검사, 판사에 의해 수사가 재개되어도 범인을 밝혀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동안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이를 잃은 슬픔도 지탱하기 힘들텐데, 범인은 친족 중 하나라는 것이 분명한데도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아빠는 사촌을 죽이고, 감옥에 엄마도 친자식을 죽인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지...

작가가 엄마의 입장에서 쓴 부분들은 정말 아이를 잃은 슬픔이 곧바로 전해질 정도이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썼다는 사실을 알고 읽었기 때문에 함께 범인을 밝혀내고 싶었다. 하지만, 작가는 실제 이야기와 똑같이 끝을 맺는다. 계속된 수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고, 과학의 발전에도 마지막 남은 증거, 우표 뒷장의 DNA조차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긴 인고의 세월을 거쳐 부부는 세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나보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은, 이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단지 죽은 아이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은, 피에르와 내가 그 모든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함께 이겨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옥살이를 할 때조차 떨어지지 않고 늘 꼭 붙어 있던 부부뿐이다."...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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