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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가끔 외국영화들을 보다 보면, 자주 보게 되는 상황이 있다. 평소에 각별한 애정이 있거나 혹은 잘 모르던 친척에게서까지 느닷없는 유산을 받게 되는 상황 말이다. 현금을 받게 되는 경우보다는 대저택을 소유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종류의 영화들 중 가장 최근에 보았던 영화로는 <어느 멋진 순간>이 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드넓은 땅과 멋진 저택, 그리고 포도밭까지...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의 첫 부분은 바로 이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갑작스런 삼촌의 죽음과 삼촌이 남긴 멋진 저택 등등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어느 멋진 순간>에서 만났던 첫사랑의 설레임이나 아름다운 추억 같은 것들은 없다. 대저택은 사람이 살지 않은지 오래되어 폭삭 주저앉기 직전이고 이 저택을 사람이 살 만한 수준으로 만들려면 "겁나게, 악 소리 나게, 살 떨리게 비싼...(18p)" 돈을 들여야만 한다. 그래서 주인공 폴 타네씨가 선택한 방법은 불법 노동자들이 우글대는 '인력시장'에서 자신을 도울 사람들을 고르는 수밖에....^^ 이런 과감한 도전이 타네씨의 '호화여객선'을 침몰시키고, 해적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게끔 하리라는 것은 타네씨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타네씨의 일꾼들이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없다. 날강도나 다름없는 2인조 기와공(심지어 나중에 도둑질까지 서슴지 않는..)과 하루종일 섹스 이야기만 해대는 2인조 미장공, 하루에도 몇 번이나 미사를 드리는(일보다 미사가 우선시되는..) 전기 배선공, 일단 일을 받아놓고 뒷감당을 못하는 굴뚝 수리공 등 다양한 일꾼들은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고 사고만 친다. 타네씨 입장에서는 얼마나 "속 타는" 일일까.^^ <옮긴이의 말>에서 주인공 "폴 타네"를 "속 타네"로 바꿔 부르는 것이 너무나 공감이 될 정도이다.
" 집을 수리하는 내내 나는 나한테 뭔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쳐낼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생기느니 말썽이요, 찾아오느니 도둑놈들일 수가 있단 말인가. 내 말투나 행동을 보면 다들 나를 '봉'으로 여기게 되는 모양이었다."...(127p)
이 문장들이 속 타는 타네씨의 마음을 얼마나 잘 대변해주는지...ㅋㅋ 또한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때를 떠올려주었다. 길에만 지나가면 도를 닦거나 관상을 보는 이들이 왜 자꾸 나만 잡는지, 또 사기꾼들은 왜~ 자꾸 나한테만 말을 거는지 그들에게 속는 내가 너무나 한심하고 바보같다고 생각하던 때 말이다. 내 얼굴에 "봉"이라고 써져 있나...라며 한탄하던 그 때... 하지만 타네씨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같이 속상하거나 안타까워지지는 않는다.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지 자꾸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원래 많은 인간 군상들을 만나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 이런 일쯤 겪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런 생각이 든다. 아마 타네씨도 그렇지 않았을까. 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도저히 사람이 살 수없는 큰 집을 수리하며 이사람 저사람과 만나 부딪히고 일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집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는 절대로 집을 가질 수 없다. 그 안에 들어와 살 뿐. 즉 '생활'할 뿐. 어쩌다 운이 좋으면 집이랑 친해질 수 있다. 그러자면 시간과 노력과 참을성이 필요하다. 일종의 '말없는 사랑'이랄까. 우리는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나하나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 힘과 연약함도. 그리고 수리를 할 땐 오랜세월에 걸쳐 그 안에 자리 잡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가 지나고 한 해 한 해가 지나면 집과 그 안에 사는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런 우정이. 그때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으리라. 이 집이 절대로 우리 것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를 평생토록 든든하게 지켜주리라는 것을."....(78p)
나도 이런 집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