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간혹 이 "우화"라는 단어에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낭패..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내가 느낀 <<돼지꿈>>은 매우 현실적인 에피소드의 모음이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중반 이상의 여성들(특히 주부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쳇바퀴 돌 듯 매일 같은 일상의 아이들 돌보는 일, 남편 챙기는 일과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을 겪어보지 못한 독자들이라면 이 책은 그저 먼 세상의 새롭지 않은 그저 그런 소설이 될 것 같다.
"한 송이 꽃이길 바랐으나 속절없이 드세져버린 우리 시대 여성들에게 바치는 인생우화"라는 문구처럼 이 소설 속에는 내 어머니의, 내 친구들의, 내 이웃의, 그리고 바로 나의 이야기가 있다.
여자는 그저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시대는 끝났다.
"커리어 우먼"이라는 꿈을 품고 대학교에 들어가고, 아주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전문가...로서 취직했던 젊은 시절의 나.
세월은 흐르고 어느새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고 몸매도 얼굴도 피부도 이미 예전 젊은 시절의 나는 아니다.
<한낮의 산책>의 정애나 <아내의 30대>의 아내처럼 이미 젊지 않은 나에게 실망하고 더이상 꿈을 실현할 수 없음을 한탄한다.
우리를 더욱 초라하게 하는 것들은 많기도 하다.
오랫만에 만난 친구의 존재...<고장 난 브레이크>...나 말도 안되는 것들로 시비를 거는 시어머니...<해산>... 혹은 평소엔 갖고 싶지도 않은 누군가의 다이아반지...<결혼반지>...같은 것들.
아마도 이런 것들은 정말로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다만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버겁고, 아둥바둥하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화도 나서 하는 변명들이 아닐지.
"여자들이 살아야 하는 세계의 답답함과 폐쇄성, 그리고 숨은 불씨처럼 때때로 참을 수 없는 자기 모멸감과 은밀한 탈출의 꿈틀거림을. 바람 센 날이면 젖은 머리 말리는 척 창문을 활짝 연 베란다에 서서 긴 머리칼을 하염없이 날리며 밖을 내다보는 것, 낙엽 쌓이는 가을 길, 눈 내리는 겨울바다를 보고 싶어 하는 것 따위를 당신은 유치한 소녀적 감상이라고 비웃지만 그것이 이미 어찌해볼 수 없는 삶의 절망감, 생활에 대한 회의의 조용한 표현인지를 모를 것이다."...118p
이미 모든 것을 겪은 엄마는 그래서 자꾸 잔소리를 하시는 거겠지.
<보약>의 어머니처럼 "여자와 집은 가꾸고 위하기 달려다..."고...우리 엄마도 꼭 그런 잔소리를 하신다.
그럼 나도 <보약>의 '나'처럼 괜히 민망하고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을 막아보려 팩!하고 새침한 소리를 해버리는 것이다.
<<돼지꿈>>에는 결론이나 해법이 없다.
그저 우리네 삶의 한 단편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나만이 아니라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구나..."라는 위로를 받는다.
위로를 받았으니, 또 다시 힘내서 살아봐야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