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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몽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6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로써 호시 신이치의 책은 두번째다. 그런데 전에 읽었던 <<요정 배급 회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다. <<요정 배급 회사>>는 타임머신과 우주선 등 미래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울려 있다면, <<흉몽>>은 미래와 결부되는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 현실 그 자체에 대한, 그야말로 "나쁜 꿈"이다.
<<한여름 밤의 꿈>>을 생각나게도 한다. 그 느낌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기분 나쁘고 끈적끈적한 것이 다를 뿐이다. 요정이나 요괴, 혹은 망령, 부적 같은 것들이 등장하고 그런 것들에 의해 사람들은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은 그 자신의 행동에 의한 결과일 뿐이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욕심, 자만, 허세 같은 것으로 가득 찬 인간 내면을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아내로서, 주부로서 가장 공감된 작품이 있었는데 바로 <깊은 사이>다. 성공을 향해 달려나가던 남자는 거액의 자금을 투자한 사람의 딸과 결혼하고 일과 사랑 모두에서 만족할만한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결혼 후 5년 정도가 지나자 가정과 아이에게만 매달려 있고 살도 찐 아내에게서는 점점 흥미를 잃고, 주위의 다른 여성에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너무 쿨한 그녀에게서 또다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여성들과 '깊은 사이'가 된 그는 어느 날 진실을 알게 된다. 자신과 '깊은 사이'가 되었던 그 모든 여성들이 사실은 부인의 또다른 분신이었다는 것을.^^
이 얼마나 멋진 결말인가! 끝도 없이 다른 스타일의 여성을 탐하던 그는 결국 모두 "아내"라는 울타리 안에서 놀아난 것이 되었다. 부인은 마음껏 즐기라고 하지만, 더이상 어디서도 누구와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된 그는 그야말로 모든 아이러니에 빠져 있다. "완전한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서.
<마이너스>라는 작품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속 깊은 곳(이기심)을 건드린다. 우연히 "마이너스"라는 부적을 갖게 된 그는 계속해서 마이너스되는 일만 일어나고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게 되는데, 나름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는 사람에게 부적으로 주게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것이 "플러스" 효과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성공하게 된 사람이 부적을 돌려주러 왔으나 그 사람은 받지 않는다. 욕심이 없다는 말에 스스로 하는 말.
"당치 않으신 말씀. 욕심은 지나칠 정도로 있다. 다만 결단력이 없을 뿐이다."...104p
누구나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다. 좋은 점보다는 특히 더 나쁜 점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그 나쁜 점에 대해서는 함구해버린다. 나 자신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인 것이다. 그런데 호시 신이치의 작품을 읽다보면 그런 치부가 드러나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아무리 겉으로는 착하고 쿨한 척 해도, 결국은 나만 챙기는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누구나 그런 것을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다. 게다가 미래나 요괴와 망령이 등장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읽는 재미까지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