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왕의 밀사 - 일본 막부 잠입 사건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651년(효종 3년) 일본의 4대 쇼군 이에쓰나가 즉위하고, 열한 살의 어린나이에 즉위한 쇼군을 노부쓰나 로주와 전대 쇼군의 이복동생인 호시나 로주가 보좌하고 있다. 막부가 어수선한 틈을 타 유이 쇼세쓰라는 낭인이 막부 전복의 음모를 꾸미다 발각되는 일도 일어난다. 쇼군의 위엄이 실추된 가운데, 즉위 2년 후 이에쓰나 쇼군은 쓰시마 번주를 통해 조선에 정식으로 습직 축하 사절단인 통신사를 요청한다. 조선통신사의 내방을 통해 막부의 권위를 다시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었다.
이 통신사는 당시 어떤 의의를 가졌을까. 중국 심양에서 8년이나 볼모로 잡혀 있었던 효종은 명의 멸망을 지켜보았고 누구보다 청을 잘 알았으며 국제 정세도 잘 알고 있었다. 효종은 명나라가 멸망한 결정적인 원인을 무력한 군사력으로 판단하고 조선에서도 무신을 요직에 등용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효종은 북벌 정책을 마련하고 있었으나 그 전에 생각해야 할 문제는, 임진왜란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으므로 일본의 동태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소설의 무대가 흥미롭다. "한국 팩션"이라는 이름을 걸고서 소설의 배경 대부분이 일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조선통신사는 가는 데만 6개월이 걸린다는 데, 무려 485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며 과연 아무 일도 없을 수가 있을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소설인 것 같다. 실제로 1764년 조선통신사 사행길에 상방도 훈도 최천종이 살해된 일이 있고, 이 사실 하나로 작가의 머릿속을 상상하게 만들었다니 매우 흥미롭다.
게다가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 하나.
"초가집도 사는 사람이 바뀌니 아기 새의 집이로다."
작가는 실제 인물과 실제 사건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하이쿠를 자신의 상상과 잘 버무려 놓아 아주 밀도 있고 치밀한 추리소설을 만들어냈다. 실제 사건보다 더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상상의 사건. 바로 조선통신사의 방문 중에 일본 막부 쇼군의 고케닌 기요모리가 살해된 것! 그것도 범인은 조선통신사의 종사관 남용익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 하나로 일본과 조선은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소설은 3인칭 시점이지만 중간중간 역관 명준의 꿈을 통해 1인칭으로 바뀌기도 하는데, 난 이 부분이 참 좋았다. 명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 인물의 성격과 생각, 심리를 아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해 명준은 자신을 다른 이들과 오버랩시키며 다른 이들의 심리도 함께 알 수 있게 해 준다.
어떤 사건이든 사건은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여 행동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처음부터 진중한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것들을 자신의 입장만 표명하고 혼자 생각해서 결론을 내기 때문에 오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수도 없이 많다. <<왕의 밀사>>가 바로 그런 사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새벽이 석양 같고, 석양이 새벽 같구나! 아아, 새벽의 여명이란 잔광으로도 느껴질 수가 있구나..... 삶이란 가변적이고, 무엇을 바라보는 시각 도한 처해 있는 입장이나 애상에 따라 상대적으로 보일 수 있기 마련이구나!" ----204p
사실 처음 앞부분에선 익숙치 않은 일본의 역사와 전설 등으로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뒷부분 부록 부분에 짧지만 중요한 부분만 설명해 놓은 출판사의 배려 덕분에 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