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놀 지는 마을
유모토 카즈미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유모토 가즈미의 작품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봄의 오르간>>도 주변에 추천할 만큼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그녀의 책이 나오자마자 선택했다. 그녀의 책은 줄거리를 말하기가 조금 애매하다. 기-승-전-결이나 서론-본론-결론의 구조를 거치기보다는 그저 일상적인 매일매일을 따라가 서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건이 하나도 없는 지루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게 빠져든다. 그녀의 책엔...

엄마와 가즈시는 1970년, K시에 살고 있다. 그들은 이혼한 아버지에게서 도망치듯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이사를 다녔다. 그리고 이루어질지 확신할 수 없는 '언젠가~' 놀이를 하며 환상 속에서 붕~ 뜬 듯 생활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외할아버지인 짱구영감이 나타나고 엄마는 그런 짱구영감을 애증의 관계로 바라본다. 하지만 짱구영감이 나타난 이후로 그들의 삶은 부질없는 환상 속이 아닌 안정된 현실 속에 자리잡는다.

유모토 가즈미라는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변화를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는데도 난 책을 읽으며 그들의 심중 변화를 너무 자세히 알 수 있어서 놀랄 때가 있다. 특히 가즈시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어쩌면 내가 어머니를 대하는 그 마음과 비슷하게 오버랩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엄마는 한밤중에 손톱을 깍았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짱구영감의 옆에서 천천히 또각, 또각..... " ----7p

엄마가 짱구영감 옆에서 손톱을 깎는 이유는 "한밤중에 손톱을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면서도 엄마는 짱구영감이 좋아하는 된장국을 끓이거나 코끝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 가족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도 있고, 그래서 미움이 생기지만 또한 "가족"이기 때문에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다. 짧을수도, 길 수도 있는 1년동안 짱구영감과 함께 살면서 엄마와 가즈시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가족"을 되찾았을 것이다. 힘든 세상을 사느라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책임지지 못했던 짱구영감만의 자식 사랑 방법도 감동적이고 그 사랑을 받아들일 줄 알았던 엄마도 멋지게 보인다. 또, 이런 모든 과정을 옆에서 혹은 직접 겪었던 가즈시도 "가족"이라는 단단한 끈 안에서 바로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다는 것. 가족이라고 해서 소홀히 하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역시 실천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이런 좋은 소설을 읽을 때만은 나도 노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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