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자의 철학 - 혼합의 시대를 즐기는 인간의 조건
김용석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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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어려울 것 같다. 철학을 가장 쉽게 풀어 썼다는 <소피의 세계>도 두번이나 시도했다가 포기한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앞의 "두 글자" 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글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궁금했고, 잘못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을 계기로 바르게 써야지~하는 생각도 있었다. 요즘 내가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글짓기에도 무척이나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가 김용석은 여는글에서 "천 가지 생각으로의 초대"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글자의 의미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혹은 모르는 척 해 왔던 또다른 의미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또한 함께 생각하고 즐기자고 한다. 그렇게 하면 두 글자로 된 말을 두 가지 생각이 아니라 천 가지 생각으로 만들수 있다는 것. 그것이 작가가 이 책을 쓴 의도이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인간의 조건(생명, 자유, 유혹, 고통, 희망, 행운, 안전), 2부에서는 감정의 발견(낭만, 향수, 시기, 질투, 모욕, 복수, 후회, 행복, 순수) 그리고 3부에서는 관계의 현실(관계, 이해, 비판, 존경, 책임, 아부, 겸허, 체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이 책은 대체적으로 이해하기가 쉽다. 작가가 글을 쓰기 전 항상 많은 공부를 한다는 데, 그것이 관련 영화를 보고 관련 책을 읽어 그 자료들이 책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려울 것처럼 느껴지던 설명이 예로 나오는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에 빗대어 설명하면 그 의미가 바로 내 가슴에 전해진다. 1부 자유편에서 <블루>의 주인공 줄리가 정사를 나누는 '푸른 방'의 경계(둘만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경계)가 그렇고, 유혹편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유혹하며 나누는 대화를 인용한 부분도 그러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을 소개하자면, 2부 감정의 발견에서의 "낭만"과 3부 관계의 현실에서의 "체념"이다.

"낭만"에서 작가는 노래 두 곡을 인용한다. 하나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이고, 또다른 하나는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이다. 난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나이 드신 분들이나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해왔다. 노래방에 가면 우리 아버지가 부르시는 노래이고, 노래 자체도 30대인 내가 즐겨 부를만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오히려 몇 년전에 유행했던 <낭만 고양이>를 더 흥얼거리던 나이다. 그런데, 그 노래 가사를 활자로 보니...아~ 어쩜 그리 가슴을 후벼파던지... 정말 "낭만"이란 두 글자가 노래 가사에 뚝뚝 떨어져 있다.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그런 촌스럽고 소박하고, '실연의 달콤함'이라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추억을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체념"의 장에선 동화 두 편이 나오는데,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케네스 그레이엄의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다. 이 두 편의 동화를 통해 체념과 포기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일상적 체념과 삶을 초월하고 달관하는 체념에 대해 설명한다. 이 두 편의 동화는 읽어본 적은 없지만 줄거리라든가 그 안에 내포된 주제 등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과 "체념"을 연관지어 생각하니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포기는 아무때나 그만두는 일이고, 체념을 위해서는 깊은 깨달음이 있든지 전환의 진통을 스스로 경험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체념의 과정이 아프다고. 포기는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체념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책의 매 주제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나에 관하여, 우리에 관하여, 사회에 관하여...그리고 존재 자체에 관하여. 글자의 의미를 알면 제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그냥 아무렇게나 쓰는 말들이 사실은 깊은 의미를 담은 글자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 글자는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이다. 나에게 이해(용서와 함께)란 무엇인지, 책임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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