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는 여성, 나혜석과 후미코
나혜석.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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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우왓"을 외쳤다. 뛰어난 편집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표지 안쪽 옮긴이 소개를 읽다가 알았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작가 시리즈'를 엮었다는 사실을. 그럼 믿고 읽는다. '작가 시리즈'부터 좋은 주제로 잘 알려지지 않은 글들을 묶어 펴 낸 것에 무척 감동이었다. 그런 그가 엮은 책이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식민지 조선의 부귀한 나혜석과 일본의 가난한 작가 후미코의 비슷한 여행기를 함께 읽는 책이다.


나혜석에 대해선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주워들어 대강은 알고 있었다. 또한 여성의 인권에 대해 쓴 글에 대해서도 한 편 정도는 읽어본 적이 있었다. 나혜석이라는 여성의 삶을 알고 읽은 그 글은 무척 처절하고 아렸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의 <구미여행기>는 그녀의 불행이 막 시작되기 전 혹은 그 불행의 씨앗이 되는 글이다. 때문에 왠지 이 글이 곧 일어날 불행에 앞선 전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나혜석의 여행기는 무척이나 무미건조하다. 마치 여행기라기보다는 간단한 메모를 모아놓은 것 같다. 자세한 묘사나 설명, 자신의 느낌이나 감상 같은 것보다는 어디를 갔고 누구를 만났으며 무엇이 있다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후미코의 <삼등여행기>는 사뭇 다르다. 작가의 글솜씨 그대로 마치 요즘의 여행 에세이를 읽는 듯 그곳 장소나 주변 거리 등의 설명, 묘사보다는 그곳에서 겪은 일 위주로 서술되고 있다. 어쩌면 이건 식민지 여성과 다스리는 나라의 여성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비록 나혜석은 1등칸을 타고 최고로 유명한 곳에 지체 높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지지만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위치이고 후미코는 3등칸을 타고 언제나 돈에 쪼들리지만 그 무엇에도 거리낌없는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 점들을 비교해서 읽고 있자면 비록 이 두 편의 글은 모두 여행기이지만 우리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때문에 가슴 한 켠이 아파온다.


여행은 현실을 벗어나 쉬고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기 위해 떠난다. 실제로 좋은 여행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자양분이 되기도 하는데 두 여성의 여행이 각자의 역사와 사회 상황에 따라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어 생각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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