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을 겪게 된다. 어릴 때에는 그런 일들이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나 어른이나 이런 일들을 맞닥뜨리게 되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때로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큰 상처로 인해 되돌리기 힘든 상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예 대처하지도 못할 만큼의 큰 일을 겪는다면, 사람이 견딜 수 있을까.
릴리언은 영혼의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을 한순간에 잃는다. 자신의 눈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는 모습을 목격한 후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낸다. 처음 1년은 아이들은커녕 자신조차 돌볼 힘이 없어 병원에서 보낸다. 하지만 릴리언에게는 돌봐야 할 아이들이 있었고 온 마음으로 그녀를 지탱해주는 동생을 비롯한 가족들이 있었으므로 그 지옥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다. 4년차, 이제 겨우 웃을 수 있게 됐고 조금씩 농담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생활을 위한 에너지일 뿐 자신의 행복을 위한 행동에선 언제나 주춤한다.
떠난 사람을 보내고 난 후, 남겨진 사람은 모든 것에 자신의 탓을 하게 된다. 그 사람과의 행복했던 추억보다는 그 사람에게 잘못했던 것들을 곱씹게 된다. 자신의 행복이 이미 떠난 사람에게 죄가 될까봐 망설이는 일도 생긴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된단고들 얘기하지만 사실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이면 이 시간은 끝도 없이 계속되는 것만 같다. 하루하루의 생활로 버티는 것만도 힘이 든다.
릴리언도 그렇게 지냈다. 회사와 집, 아이들 학교, 자주 가는 쇼핑몰로 이어지는 사각형 궤도로. 이런 그녀에게 변화가 생긴다. 일로 인해 듣게 된 원예 수업.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릴리언에게 흙을 만지고 식물을 키운다는 건 익숙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가게 된 이 원예 수업은 뜻밖에 릴리언에게 새로운 행복감을 안겨준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토록 편할 수가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여기에서 은유적인 교훈을 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굳이 애쓰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몇 년만에 처음으로 나는 생각을 멈추었고, 그저 땅을 파는 데 열중했다."..143p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혹은 이런저런 고민이 많을 때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헤쳐나가게 되는데 의외로 아무 생각없이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육체노동이 무척 도움이 된다. 특히 자연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땀 흘려 일하는 건 알 수 없는 성취감과 행복감까지 느끼게 해 준다.
애도 기간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는 훨씬 더 깊은 슬픔 속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어 하고 누군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생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아마도 다른 식으로 그 슬픔을 삭이고 있을 것이다.
릴리언은 원예수업을 통해 흙을 만지며 무언가를 자라게 한다는 평온함을, 그곳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 막 시작되려는 행복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추억과 지금의 행복이 치환될 수 없음을 깨닫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모든 일에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릴리언과 두 딸의 이야기가 그 용기와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 책이었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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