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별 - 슈니츨러 명작 단편선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이관우 옮김 / 작가와비평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때에는 "단편"을 좋아하지 않았다. 뭔가 소설 속 주제나 인물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야기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이가 어려서 삶의 진리를 아직 깨치기 전이었거나 독해력이 그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장편소설은 조금 놓치고 읽어도 계속 읽어나가면 알게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단편의 경우 한 문장이라도 놓치면 안 됐기 때문에.

우리 단편을 공부하면서 조금씩 단편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단편이 주는 짧은 글 속에 담긴 진리가 가끔 폐부를 찌른다. "헉!"하고 들이마셔지는 감동이나 깨달음이 있다. 그 짧은 호흡 속에 한 문장, 한 문장이 주는 놀라움이 좋아졌다.


<어떤 이별>은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소설가 겸 극작가인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단편선이다. 나로선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그런 첫 작품을 이번에 처음 번역되어 소개되는 5편을 포함한 단편선을 만나게 되어 기분 좋다.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주로 "죽음"과 "성"의 문제를 다루는데 그 당시 금기였던 것들을 심리 분석을 통해 끌어냈던 프로이트가 언어로 들춰낸 슈니츨러를 시기까지 했다니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이번 단편선에는 총 15편이 담겨 있다. 중간쯤 위치한 <구스틀 소위>는 단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가까운데 그 소설을 제외하고는 다른 14편의 단편은 7-8페이지 정도에서 길어야 40페이지 정도 되는 굉장히 짧은 단편들이다. 주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관되게 "죽음"과 "성"을 다룬다. 사실 읽어나가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불륜"이었다. 그것도 남자들의 불륜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유부녀의 불륜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느껴져서 처음엔 좀 불편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생각해 봤을 때, 또 그런 내용 상의 문제보다는 작가가 그 사건을 통해 어떤 것을 드러내려 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단지 소재이고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주제는 일관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표현법은 무척이나 다양한다. 대부분 한 작가의 단편들은 비슷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경우 주제는 같지만 표현법이 달라서인지 읽을 때마다 굉장히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어찌 이런 멜로디가>와 <3종의 영약>은 마치 전래 동화 같은 느낌인가 하면 <상속>과 <홀아비>는 마치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구스틀 소위>는 길이도 긴데 처음부터 끝까지 구스틀 소위의 생각을 따라 내적 독백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하마터면 읽는 걸 포기할 뻔도 했을 정도이다. 이 남자는 제빵사에게 모욕을 당한 뒤 어쩔 줄 몰라하며 자살을 생각하며 밤을 새는데 그 사이 정말 쉬지도 않고 징징댄다. 이 독백이 무려 50페이지 정도가 이어지니 아주 읽는 데도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보면 작가가 모욕 당한 한 남자의 생각을 어찌 이리도 잘 구현해 냈을까 놀랍기만 하다. 모욕을 당하고 자살을 결심하고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는 와중에도 남겨질 가족들 걱정, 사람들이 수군거릴 걱정, 전에 만났던 아가씨들 생각 등 이리저리 튀는 생각들이 마치 현실 속 사람들의 뇌를 그대로 표현해 낸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안드레아스 타마이어의 마지막 편지>는 제목 그대로 유서를 그대로 옮긴 듯하고, <라이젠보크 남작의 운명>이나 <총각의 죽음>은 거의 미스테리 추리 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각각의 표현이나 장르가 다르게 느껴지더라도 각 작품마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 만큼은 정말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 작품들을 통해 아직 "죽음"의 세계를 탐구하지는 못했다. 몇 번 더 읽어서 알아가고 싶다. 소설의 묘미는 그런 것 같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재미.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어 즐겁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


#어떤이별 #작가와비평 #아르투어슈니츨러 #단편선 #단편소설 #오스트리아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