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50대를 바라보는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명절이면 집안에선 장자인 사촌 오빠 위주로 식단이 짜여졌고 학교에서도 너무 당연한 듯 남자 아이들과 비교당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내 아이들, 딸들이 자라는 시대에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이런 차별은 여전하다. 남자 아이들 대부분은 오히려 여자 아이들의 힘이 더 세다며 아니라고 부정할지 몰라도 중학교만 올라가도 선생님들에 의해 이런 차별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 그런데도 요즘 젊은 남성들의 여성 혐오는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도대체 여성 혐오는 언제부터, 왜 시작된 것일까.
<판도라의 딸들, 여성 혐오의 역사>에서는 그 시작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인 잭 홀런드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지금껏 다양한 분야의 정치와 테러리즘에 관한 논픽션을 출간해 왔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유작으로 사망 직전, 침대에서까지 이 작품의 교정을 봤다고 한다. 이후 아내와 딸에 의해 빛을 보게 된 이 책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양에서뿐만 아니라 책 속 근거가 되는 수많은 사례가 그렇다. 서문에서부터 읽기 시작하고 본문에 들어가면 이 책이 그저 한 저널리스트가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가 평생을 생각해 온, 그리고 꼭 내놓았어야 한 일종의 논문이다.
잭 홀런드는 여성 혐오의 시작이 기원전 8세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이른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다.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인류에게 불행을 가져온 것은 무지하고 참지 못하는 호기심을 가진 판도라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의 많은 철학자들(소크라테스를 포함해서)과 로마 정치가들이 여성 혐오를 조장하며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보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역사는 계속되고 이 여성 혐오는 중세 시대 마녀사냥으로 정점을 찍는다.
책은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방대한 자료로 가득하다. 역사 속에서 어떤 식으로 여성 혐오가 나타나는지를 열거하고 있는데, 정말 끝이 없다. 여성으로서 이 자료를 읽고 있자니 계속해서 우울해질 정도이다. 역사 속에서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지금껏 이름이 알려진 너무나 많은 위인(이제 그들을 위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얼마나 많은 여성 혐오를 강조했는지!
근대에 와서 여성들의 인권을 조금씩 찾아가는 여정도 전혀 쉽지 않았음을, 특히 당연한 인권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이조차 정치로 이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을 찾고 싶다.
"최근 역사에서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을 배워야만 한다.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다.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외교 정책은 인류의 절반을 비인간화하게 된다."...315p
"여성 혐오에 대한 역사의 가르침은 네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만연해 있고 끈질기며 유해하고 변화무쌍하다."...321p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진정한 넘녀 평등을 이루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잭 홀런드의 말처럼 여성 혐오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하다. 내가 한창 공부하던 시절 알았던 페미니즘의 정의가 바뀔 정도로. 많은 공부를 하지도 않고 인터넷에서 얻은 조각짜리 지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여성도 남성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뒤편 이라영님의 서평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이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한 개인의 주장이 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장을 위해 뒷받침 된 수많은 실례들, 문학 속에서 드러난 여성 혐오 예시들은 충분히 우리에게 직접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히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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