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트
아네 카트리네 보만 지음, 이세진 옮김 / 그러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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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는 트리플A형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생각하고 배려해서 생각하는 것도 피곤하고 그렇다고 내 주장을 확실하게 펴지도 못해서 항상 당하고만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혼자가 낫겠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고. 대학에 들어가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난 방어기제로 "회피"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고 해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나이를 먹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지키려다 보니 아줌마 파워로 좀 달라지고 적응했다고 해야 할까.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좋고 중요하고 행복하지만. 


그런 나이기에 <아가트>가 가슴에 콕콕 박히듯이 다가왔다. 처음엔 은퇴를 몇 개월 앞두고도 그 날짜를 하루하루 카운팅하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노의사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의 하루를 쫓아가고 그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차츰 이해하게 된다. 매일매일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도대체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 걸까. 


더이상의 힘이 나지 않아 은퇴를 결정하고 매일 그 횟수와 날짜를 센다. 며칠, 몇 번의 상담이 남았는지. 바뀌어가는 것 같지도 않은 환자들의 푸념이나 우울한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나'는 어느 날 재입원 대신 꼭 상담을 받고 싶다는 독일 여성, 아가트를 만나게 되고 지금의 상태에서 상담을 더 늘리고 싶지 않았지만 떠안듯이 상담을 맡게 된다. 이제, 이 노의사의 일상이 아주 조금씩 바뀌게 된다. 


"하지만 그때가 된다고 해서 내 삶에 과연 즐길 만한 보람이 있는 그 무엇이 있을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확실한 것들이라고 해봤자 두려움과 외로움 아니겠는가? 비참한지고.나도 결국은 내 환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51p


"아무도 마음 써주지 않는 사람은 한낱 미물처럼 생을 마치게 되는 셈이죠. 저는 때때로 그런 존재는 사실상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나 생각한답니다."...82p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아가지 않는다. 비서를 면접하고 함께 일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정작 그 비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옆집의 피아노 소리는 듣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집 안 물건들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그대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았지만 이 노의사는 관계를 맺는 피곤함을 더하고 싶지 않아 홀로 살아왔나 보다. 그의 지침은 나이가 들고 너무 많은 일을 해서가 아니라 홀로인지 너무 오래되어 느끼는 외로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때문에 소설 후반부 그의 변화를 너무나 극적이며 정말이지 감동적이다. 


뒤늦게 둘째를 낳고 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첫째가 내게 내 준 숙제가 있었다. 오늘 가서 엄마들을 만나면 최소 3명 이상의 전화번호를 따오란다. 어딜 입학하든 그렇게 해서 꼭 아이 친구들을 만들고 울타리를 만들어주라고 말이다.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한 엄마에게 한 아이의 충고였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혼자 있는 시간의 행복함은 나를 지탱해주고 사랑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선 한 발 내딪기가 필요하다. 그 정도의 노력도 하지 않고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기를,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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