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호원숙 그림 / 열림원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언제부터 우리집에 있었을까. 출판은 2007년이라는데 내 책 띠지에는 2009년 봄이라고 씌여있으니 나는 2009년 봄에 구입했나보다. 처음엔 호기롭게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자리했다. 자기 전 한두 꼭지라도 읽고 잠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번 들춰보지 못하고(사실 난 절대로 침대에서 책을 읽지 않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몇 달을 그상태 그대로인 게 미안해서 잠시 애정하는 책장에 꽂아둔 게.... 벌써 11년이 지났나 보다. 그새 박완서님은 돌아가시고 나는 그 사이 <나목>을 읽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를 다시 읽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구입했다.


박완서님은 유독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설로 많이 쓰신 분이라 나는 가끔 이분의 삶과 소설 속 내용을 헷갈려하곤 한다. 둘을 떨어뜨려놓으려 해도 워낙 강한 이미지로 남아있어 그런지 소설 속 주인공들이 마냥 이분의 과거인 것만 같다. 그러다 <호미>를 읽으니 이제야 작가 박완서가 보인다. 그래서 좋았다. 많은 산문 중에 <호미>를 선택했던 건 언젠가 정원 생활을 꿈꾸는 나의 대리 만족이기도 했고 소설에서 좀 분리시키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호미>는 그런 본인의 전원 생활 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첫 챕터인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의 내용이 맞다. 혼자 사부작거리시며 스스로가 정한 이미지 따라 정원을 가꾸시는 모습과 그 와중에 생각하게 된 것들,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뒷부분의 이야기들은 본인이 생활하시면서 겪으신 일들과 그 와중에 생각하게 된 것들, 느끼게 된 것들, 깨달음이 담겨 있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 박완서님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어쩌면 내 머릿속에서 신격화했을 이미지를 조금 깨어 보기도 하고 친근한 이웃집 어머니처럼 다가가기도 한다. 그저 편안하고 사려깊고 배려심 깊은 분일 거라는 생각에서 '아, 이분도 나와 같은 옹고집이 있구나.', '아기처럼 병원도 가기 싫어하시네.' 하고 말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읽고 있자니 어쩌면 이분은 자신의 치부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이렇게 글로 다 표현했을까 싶어져 다시금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뒷부분으로 가면 분위기가 또 바뀐다. 맛있게 먹거나 추억에 남은 음식 이야기를 통해 맛깔난 표현에 감탄하기도 하고 같은 문인들을 보내면서 쓴 추억과 추모의 글들은 짠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엔 전원 생활이 궁금해서 구입한 책이었는데 오히려 이 뒤쪽의 글들이 더 가슴에 남는 건 공감에서 오는 저릿함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박완서 님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6.25와 독재 시절 등 우리나라의 격변기를 모두 거쳐 온 분이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 속엔 역사 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 된다. 그럼에도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밝고 순수하게 웃는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박완서님의 또다른 책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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